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루카의 복음.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꽤나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 5:9)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의 탄생에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 14:27) 라고 하실 때의 예수님 말씀의 포인트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평화는 세상이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조용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늙은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은 ‘반대’의 표징(루카 2:34)이 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예언을 했던 모든 예언자들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부정의와 잘못 된 행동에 대해서 그들이 회개와 회심을 하도록 부르시면서 맹렬히 비난함에 도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무관심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그 도전은 평화를 방해합니다. 하지만 분열은 예수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 (루카 11:23) 라고 예수님께서 단언 하신 것과 같이, 그분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믿음은 꾸미거나 멋을 내는 요소가 아닙니다. 믿음이란 인생의 기준이나 기초로서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비움이 아니시고, 중립적이지 않으시며, 언제나 긍정적이시고 사랑이십니다... 그분의 평화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협적인 중립이 아닙니다. 악마와 이기심을 포기함으로 예수님을 따라 선함과 진리와 정의를 선택합시다. 그러면 세상은 분열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열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기준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기준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한 삶을 살거나 아니면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것과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에 순명을 하거나 하느님께 순명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친척들 중에서도 몇몇은 그분의 삶의 방식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마르 3:20-21) 하지만 그분의 어머니는 언제나 충실하게 예수님을 따르셨으며, 그녀의 마음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셨습니다. 마리아의 믿음 덕분에, 끝에 가서는, 예수님의 친척들도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14) 우리 역시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확실히 고정하도록 그리고 심지어 어떠한 값이 따르더라도 언제나 그분을 따르도록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합시다.“

I pray 번역 원문 : George Boronat 신부 번역 : 정 대영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