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전하기 위해 꼭 바다를 건널 필요는 없습니다

겉으로는 여러분이 가르치는 듯합니다. 하지만 어느 교리교사에게 물어보아도 같은 대답을 들을 것입니다. 결국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한 번쯤, 세상에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려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당시 알려진 세계의 끝, 문자 그대로 ‘땅끝’이라 여겨지던 피니스테레까지 갔습니다. 수세기 뒤에는 16세기 스페인 출신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바다와 대륙을 건너 중국의 문턱에서 선종했습니다. 예수님에 관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들이 그분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선교사라고 하면,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세계를 누빈 위대한 성인들이나 오늘날에도 바다를 건너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먼바다를 건너지 않고도 선교사가 된 성인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간다에 해당하는 부간다 왕국 궁정의 젊은 시종이었던 성 가롤로 르왕가는 세례를 받은 직후 동료 시종들의 교리교사가 되어 신앙을 가르쳤고, 사제를 기다릴 시간이 없을 때에는 몇몇에게 직접 세례를 베풀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신앙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여 1886년에 순교했습니다.

여러분도 꼭 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예수님에 관해 거의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성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리교육을 충실히 받은 어린이는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참된 선교사가 됩니다.” 이 말은 여러분에게도 해당합니다. 선교사는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신앙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교사입니다. 바로 그런 모험이 지금 여러분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모험은 흔히 교리교육의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본당에서 성사를 준비하는 어린이들과 매주 마주 앉아 신앙의 기초를 가르치며 그 준비를 돕는 일입니다.

받고, 살아 내고… 나아가 전하기

성 호세마리아가 오푸스데이를 시작한 곳은 시험과 친구, 미래에 대한 계획을 안고 살아가던 평범한 학생들, 곧 젊은이들 사이였습니다. 1933년 1월 21일, 처음으로 성 라파엘 사업의 서클이 열렸습니다. 바로 이튿날, 성 호세마리아의 격려를 받은 그 청년들은 마드리드의 가난한 지역에 있는 한 본당으로 가서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이들에게 교리, 곧 신앙의 기초를 가르쳤습니다.

배운 것을 자기 안에만 간직하고 있을 틈은 없었습니다. 이 모임은 듣기만 하는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성 라파엘 사업은 머리와 마음, 받음과 나눔이라는 두 축 위에 서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서클에서 양성을 받은 뒤 곧바로 밖으로 나가 다른 이들에게 전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언제나 함께해야 합니다. 듣기만 하고 나누지 않는 신앙은 결국 식어 버립니다.

받은 것을 나누라는 초대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 호세마리아는 언젠가 아돌포 로드리게스 비달(훗날 사제와 주교가 된 오푸스데이 회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칠레로 갈 용기가 있겠나?” 그 질문은 그의 일생을 건 모험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께서 “용기를 내 보겠니?” 하며 건네시는 도전에 응답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에게 그것은 먼 곳으로 떠나는 일이 아닙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와 동네에서 예수님을 알리는 일에 온몸을 던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질문은 여러분에게 향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알리는 일에 뛰어들 용기가 있습니까? 교리교사가 될 용기가 있습니까?

양성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 호세마리아는 『사랑의 담금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널리 알리는 일이 시급합니다. 양성을 받아서 명확한 개념과 온전한 그리스도교 메시지로 무장하십시오. 그리하면 나중에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성인은 바로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그다지 잘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첫영성체 전에 배운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거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문가인 사람은 없습니다. 시작은 ‘예’라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주 서클과 양성 강의, 영적 지도와 묵상을 통해, 성 호세마리아가 오푸스데이를 두고 “하나의 거대한 교리교육”이라고 부른 그 양성에 참여합니다. 그 양성은 여러분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양성은 삶이 되어야 하고, 이어 다른 이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교리교육에 참여하는 일은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가장 많이 주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받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줄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참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아직 얼마나 더 받아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성 호세마리아는 『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적인 영혼이여, 먼저 자신을 살피십시오.”

교리교육을 맡기로 한 사람은 새로운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더 잘 설명하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기도합니다. 이해하지 못한 것은 질문합니다.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기에 자신의 그리스도인 생활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다 거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내적 생활도 함께 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너그럽게 따르는 이들에게 백 배를 약속하셨습니다. 교리교육 안에서 그 약속은 아주 구체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내가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가장 많이 받는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교리교육은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중 가장 큰 유익을 얻는 이는 교리교사 자신입니다. 기쁨에 찬 참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분명하고 일관된 삶을 통해 다른 이들의 길을 밝혀 줄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

레오 14세 교황이 강조했듯이, 누군가를 신앙 안에서 양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 선한 삶의 열매를 맺도록 그 사람의 마음에 심어 주는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리교육입니다.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한 아이에게 성호 긋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알려 주는 것. 하늘에는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고 동정 마리아께서 어머니이심을 설명해 주는 것. 수호천사에게 말을 걸도록 격려하는 것. 아이와 함께 첫 기도를 바치는 것.견진성사나 첫영성체를 받는 날까지 곁에서 함께 걸으며, 그날이 아이의 삶에 영원한 자취를 남기리라는 것을 아는 것.

결국 이는 우리가 거저 받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 주는 일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선물이 아니라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건네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이 말씀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세상은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그리스도인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아주 구체적인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우리의 삶을 내어놓으라는 부르심입니다. 그 섬김은 결국 우리가 사는 도시와 동네와 본당에서 교회가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성 라파엘 사업: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배우기

교리교육은 성 라파엘 사업의 할 일 목록에 그저 하나 더 보태진 항목이 아닙니다. 성 라파엘 사업이 시작된 첫날부터 그 안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서클에서 들은 내용은 강의가 끝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기도 안에서 되새기고 삶으로 옮기며… 다른 이들과 나눌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양성은 여러분의 마음을 준비시키고,교리교육은 그 마음을 더욱 넓혀 줍니다.

성 호세마리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직은 그런 내적 생활의 명확하고도 필연적인 외적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맛보면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참으로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은총을 받았는지 알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토록 많이 주셨다는 사실에 놀라워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내어 주고 싶은 열망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놀라움과 감사에서 태어납니다. 우리는 받고, 내어 줍니다. 내어 주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이 주고받음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관대함으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십니다.

어쩌면 여러분에게는 어느 본당의 한 시간짜리 교리 수업을 돕겠다고 ‘예’라고 응답하는 작은 일에서 이 모험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예’ 뒤에는 훨씬 더 큰 일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겨, 여러분의 삶을 통해 복음이 다른 이들에게 닿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