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3편) 7-8-9-10처

주님 사순 성지주일에 성 호세마리아의《십자가의 길》 14처를 4편으로 정리해 올려드립니다. 3편 7-8-9-10처

믿음을 키우기

제 7 처 

 

예수께서 두번째 넘어지심 

이제 도시의 성벽 밖에서, 예수님의 몸은 지침 때문에 다시 쇠약하여지셔서, 군중의 외침과 병사들의 거치른 취급 속에서 두번째로 넘어지십니다.

몸의 쇠약함과 영혼의 비통함이 예수님을 다시 한번 넘어지시게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죄들이 - 당신의 것도 포함해서 - 그분의 성스러운 인간성을 짓누릅니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격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는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 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폼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이사 53, 4-5 참조)

예수께서는 걸려 넘어지시지만, 그분의 쓰러지심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고, 그분의 죽음은 우리를 생명으로 되돌려 보냄니다.

우리들이 죄악을 되풀이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풍성한 용서를 가지고 우리를 사하여 주시기를 다시 결심하십니다. 그리고 아무도 실망하지 못하도록 그분은 지친 몸으로 다시금 십자가를 껴안으시며 땅 위에 세워 주시게 됩니다.

우리들의 걸려 넘어짐과 패배가 우리들을 더 이상 그분으로부터 갈라지게 하지 않도록 되어지기를. 마치 연약한 아이가 뉘우치면서 자신을 자기 아버지의 힘센 팔에 내던지듯이, 당신과 나는 예수님의 멍에에 꽉 매달릴 것입니다. 오직 이와 같은 통회와 겸손만이 우리들의 인간적인 허약함을 신성한 꿋꿋함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제 8 처 
예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제 8 처 

예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우리 주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그분을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는 몇몇의 여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Bene omnia fecit - 그분이 하시는 일은 놀랍기만 하구나” (마르 7, 33) - 하고 외치던, 예수님의 그 영광스러웠던 날들을 회상할 때, 그들은 연민의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 여인들의 울음을 더욱 초자연적인 목적으로 이끌어 주기를 원하셔서, 그분께서는 그 여인들에게 그분의 수난의 원인이고 또 신성한 정의의 혹독함을 초래하게 되는 죄를 위해 울도록 요청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 을 위하여 울어라… 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거든 마른 나무야 오죽하겠느냐?” (루가 23, 28-31)

당신의 죄, 나의 죄, 모든 사람들의 죄가 들고 일어납니다. 우리가 저지른 모든 악과 우리가 행하기를 게을리한 선행들. 그 것은 무수한 범죄와 비행의 황량한 파노라마인데, 만일 예수님께서 그분의 지극히 사랑스러운 눈길의 빛으로 우리를 위안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저지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보속을 치르기에는 인생이 어찌도 그리 짧은가요!

제 9 처 

제 9 처 
예수께서 세번째 넘어지심

 

예수께서 세번째 넘어지심 

 우리 주님께서는 정상까지 불과 4-50 보 밖에 남지 않은 갈바리아 산에 올라가는 경사진 곳에서 세번째 넘어지십니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으십니다. 그분의 기력은 더 지탱할 수 없어져서 그분께서는 기진맥진하시어 땅바닥에 쓰러지셨습니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사 53, 7)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적대시합니다…도성의 사람들과 외지 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바라사이파 사람들과 병사들과 대사제들… 그들 모두가 사형집행자들입니다. 그분의 어머님 - 나의 어머님이신 마리아께서는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아버님의 뜻을 실행하십니다! 불쌍합니다. 벌거벗으셨습니다. 너그러우십니다. 그분께서 내어 주실 게 무엇이 더 남아 있습니까 ? “Dilexit me, et tradidit semetipsum pro me.”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갈라 2, 20)

나의 하느님! 제가 죄를 미워하고, 그리고 거룩한 십자가를 제 양팔로 잡고 저 자신을 당신께 연결시켜서 제가 저의 차례로 당신의 가장 사랑스러운 뜻을 실행하게 되도록… 오직 당신의 영광만을 목표로 하여 세속적인 애착을 다 떨쳐 버리도록 관대하게 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아끼지 않고, 저를 당신과 더불어 완전한 번제(燔祭)로 바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제 10 처
예수님의 옷을 벗김

제 10 처

 

예수님의 옷을 벗김

 주님께서 갈바리아에 다다르시자, 약간의 포도주에 쓸개를 타서 십자가형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마취제로 마시도록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친절한 봉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것을 맛보신 후에 더 마시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마태 27, 34 참조). 그분께서는 그분의 사랑이 충만한 자유의지를 행하시며 자신을 죽음에다 내주시었습니다.

그 후에 병사들은 그리스도의 옷을 벗겁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하고 멍들고 맞아 터졌는데도 짜내고 싸매고 약을 발라 주는 이도 없구나” (이사 1, 6)

 형리들은 그분의 겉옷을 가져다 넷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속옷은 혼솔 없이 통으로 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든 제비를 뽑아 차지하도록 하자” (요한 19, 24)

그렇게 해서 성서의 말씀이 다시금 이루어졌습니다. “겉옷은 저희끼리 나눠 가지고,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시편 22, 18)

이것은 강탈이요, 옷벗김이며, 지극한 빈곤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게는 십자가의 나무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상에 계시니, 그 십자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세속적인 사물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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