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2일, 복자 알바로 축일에 페르난도 오카리스 몬시뇰이 전한 강론

복자 알바로는 선하고 충실한 목자로서, 영적 자녀들과 수많은 영혼들을 잔잔한 물가로, 곧 ‘사랑으로 평화로워진 마음’의 빛나는 상징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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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복자 알바로, 2026년 5월 12일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네.”

이 말씀은 복자 알바로 미사를 위해 선택된 시편 23(22)편의 말씀입니다. 복자 알바로는 선하고 충실한 목자로서,영적 자녀들과 수많은 영혼들을 잔잔한 물가로, 곧 ‘사랑으로 평화로워진 마음’의 빛나는 상징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소음이 가득차 평화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세상에서,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평화의 고요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를 한 가족 모임에서 간결하면서도 심오하게 표현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잔잔한 바다처럼 하느님을 향해 정돈될 때, Gaudium cum Pace, 즉 기쁨과 평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전파되는 기쁨이 됩니다.” (가족 모임 기록, 1988년 2월 24일) 그의 현존은 참으로 그러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고요하고 겸손한 평화였습니다.

복자 알바로에게는 성 호세마리아의 다음 말씀이 진실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의 분명한 특징은 그 영혼의 평화입니다. 그 사람은 '평화'를 지니고 있으며, 만나는 이들에게 '평화'를 줍니다.” (사랑의 담금질, 649항)

그러나 그 평화와 기쁨은 단순한 자연적 상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주님과의 깊은 일치에서 솟아나는 것이었고, 그분이야말로 세상의 참된 평화이십니다. 교황 레오 14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의 임금'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세상을 화해시키시고 우리를 하느님과 이웃으로부터 갈라놓는 모든 장벽을 허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황 레오 14세, 성지 주일 강론, 2026년 3월 29일)

평화와 더불어, 방금 들은 복음은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고 말씀합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성찬의 빵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기 전에 그 빵을 떼셨는데, 이는 나중에 십자가에서 창으로 꿰뚫릴 당신 심장의 찢김을 미리 보여 주고 상징한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랑의 논리입니다:다른 이들이 생명을 얻도록 온전히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제1독서에서 들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말씀이 특별한 힘으로 울려 퍼집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1,24-25)

알바로 복자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겸손하고 고요하게 타인을 위한 봉사에 소진시켰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헌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롭고 가까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하게 봉헌되었고,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참된 평화는 무엇보다 갈등의 부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목자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고 도망치지 않으며, 충실하게 남아 목숨으로 양들을 지킵니다. 평화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힘에 뿌리를 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그 깊은 평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고 하신 그 평화입니다.

알바로 복자가 전해 준 평화는 이해와 사랑의 자세와 함께, 강인함의 실천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거나 교정해야 할 때 그러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목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사건이나 대화 앞에서도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 오히려, 나의 자녀들이여: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거룩한 불타협으로 선의 풍요로움으로 악을 꺾으려 힘쓸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에 참된 평화가 군림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목 편지, 1989년 10월 1일)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 오늘날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진리에 목마르고, 진정성에 목마르며, 결국에는 하느님께 목마릅니다. 참된 평화는 진리가 깃드는 곳에서만 그 날개를 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한 사랑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오로가 말하듯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1티모 2,4)시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복자 알바로는 바로 성 호세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 진리를 사랑할 줄 알았기 때문에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께로 나아갑시다.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시며 아들의 십자가 곁에 굳건히 서 계셨던 그분께, 참된 평화의 길을 가르쳐 주시도록 청합니다. 또한 복자 알바로 델 포르티요의 전구를 통하여 영혼 안에 평화를 지니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줄 아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도록 청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