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연중 제 24 주일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루카의 복음. 15,1-32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묵상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정확히 우리들을 뜻하기에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찾고 계시고, 그들을 기다라고 계시며, 그들을 도우시고, 그들을 만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루카 성인이 쓴 복음의 이 15장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십니다. 성인들은 계속해서 시도하는 죄인들입니다. 성인들은 떨어지지만 계속해서 다시 일어나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폴란드 크라코우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교황님, ‘항상 위를 향해 움직이려고 일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교황님, 저는 약합니다. 저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저는 시도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경우 넘어지고 맙니다.’ 등반가들이 등산을 할 때, 다음과 같은 가사의 매우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등반의 예술 속에, 그대가 실패해서 떨어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네. 그 떨어진 그 상태로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네.‘ 그대가 약하다면, 그대가 떨어진다면, 예수님께서 계시는 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깨서는 당신에게 팔을 벌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

우리는 역경을 언제나 극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패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통회는 우리를 하느님께 데려갈 것입니다. 예술의 업적은 대개 오랜 기간의 인내로서의 결실입니다. 기술자들은 그들의 계산을 많은 시간 반복합니다. 작가들은 그들이 썼던 것을 다시 쓰는 작업을 20번도 넘게 합니다. 조각가들은 그들이 작업에 스로 만족할 때까지 많은 시간 시도합니다. 우리가 밤에 양심 성찰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수에 용서를 청하기 위해 그리고 다음 날 벌어질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과 천국은 우리가 다시 시작하는 매 시간 즐거워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찾기 위해 오시며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것. 즉, 매일 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성찰하는 것을 보는 것을 사랑하십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매일 밤 양심 성찰을 잘 하도록 도와주시고, 당신 아드님의 손에 이끌려 다시 일어나 거룩함을 향한 저의 투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I pray 번역 원문 : George Boronat 신부

번역 : 정 대영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