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사순 제2주일, 성 요셉 대축일을 준비하는 6번째 주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7,1-9

그 무렵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묵상

주님, 엘리야와 모세처럼 당신과 얼굴을 서로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어 이 얼마나 좋은지요! 우리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목소리,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메아리를 여전히 듣습니다.

주님, 모세와 엘리야가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싶어 했던 것처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나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싶은지요...! 그리고 우리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베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베드로! 지금은 침묵과 관상을 지킬 때입니다.” 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침묵은 우리의 기도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말을 한다면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연설’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회에 부모님과 함께 가는 것을 싫어하는 어린 아이와 같이 침묵이 있는 곳에서 당혹해 합니다. 교향곡의 중간에 있는 3초(단지 3초!)의 침묵이 그 아이가 “지금... 이거 뭐에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요!” 하고 외치는 소리에 의해서 끊겼습니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침묵이 음악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과 악보에도 표기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은 기도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며 ‘악보’의 부분이기도 합니다. 때때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을 소통하기 위해서 침묵을 유지하는 것을 필요하십니다. 침묵 안에 몇 분을 보내더라도 당혹해하지 마십시오.

저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당신께서 베들레헴과 나자렛에서 특히 십자가 옆에서 하셨던 것을 가르쳐주소서.

우리는 하느님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소음과 불안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의 친구이십니다. (캘커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

I pray 번역 원문 : George Boronat 신부

번역 : 정대영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