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연중 제6주일, 성 요셉 대축일을 준비하는 3번째 주일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5,17-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묵상

주님의 계명은 명료합니다. 우리는 맹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정직성은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가 ‘예’ 하는 말의 의미는 언제나 ‘예’ 일 뿐이고, ‘아니요’ 하는 말의 의미는 언제나 ‘아니요’ 일 뿐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덕이 지속적일 때 사람들은 우리가 의존할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는 우리들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우리를 곤란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정직해지는 것은 아마 다른 곤란함으로 이끌 것입니다. 진실을 숨기는 것은 몇 가지 이득을 줄 것입니다. 정직해지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복잡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직함은 언제나 매력적입니다. 그 진리, 그 계명들에 대한 오늘 복음 말씀을 읽었을 때, 우리는 ‘편안하게’될 수 없습니다. 진리는 그 누구도 믿지 않더라도 진실이고 거짓말은 모두가 믿을지 라도 거짓입니다. 흔히 말해, 모두가 하더라도 틀림틀림이고, 아무도 하지 않더라도 옳음옳음입니다.

골프 시합에서 이긴 7살 소년은 다음날 대회를 주최한 골프 클럽에 우승 트로피를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승 트로피와 함께 동봉된 편지의 내용은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제 이름은 야고에요. 지난 토요일에 저는 아저씨의 클럽에서 주최한 어린이 골프 대회에서 우승을 했어요. 점수판은 제 총점이 50샷이라고 가리켰어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아빠와 점수를 보았을 때 저는 제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아챘어요. 실제 총점은 51샷이었어요. 아빠는 우승 자격이 아닌 50샷으로 점수판에 서명을 잘못 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트로피가 저랑 대결을 한, 이 트로피를 받을 자격이 있는 친구가 받았으면 해요. 오늘 저는 점수판에 서명을 하기 전에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안녕히 계세요. 야고 보냄.

정직함은 매력적입니다. 정직함은 가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직함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저의 ‘예’ 가 언제나 ‘예’가 될 수 있게 해주시어, 정직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알려질 수 있게 해주소서.

I pray 번역 원문 : George Boronat 신부

번역 : 정대영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