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성 프란치스코, 마음의 자유를 향한 800년의 초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맞아, 성지보호구장 프란체스코 이엘포 신부가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과 성 호세마리아가 가르친 ‘집착에서 벗어남’ 사이의 공통점을 살펴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선종 800주년을 맞는 지금도, 청빈을 향한 성인의 철저한 선택은 여전히 교회에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얼핏 보면 이를 성 호세마리아의 영성과 연결하기가 어려워 보일 수 있습니다. 성 호세마리아의 영성은 특히 일과 일상생활 안에서 성덕을 이루도록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을 살펴보면 놀랍도록 깊은 일치가 드러납니다. 두 성인 모두에게 참된 그리스도교적 가난은 물건이나 재물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이라는 말보다 더 근본적인 표현을 택합니다. 바로 ‘아무것도 자기 소유로 삼지 않고’ 살아가는 것, 곧 시네 프로프리오(sine proprio)입니다. 성인은 회칙에서 수도자들의 삶을 이렇게 정의합니다.[1] 이는 단순히 돈이나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네 프로프리오는 훨씬 더 깊은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는 선마저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선을 지극히 높으시고 지존하신 주 하느님께 돌려드립시다”라고 쓰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모든 선은 그분의 것이며, 오직 그분만이 선하십니다.”[2]

성 호세마리아가 인용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도 거의 같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재능과 지성, 건강과 성공, 인간으로서 지닌 가능성까지 모두가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단순히 무엇을 소유하느냐, 소유하지 않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주신 분을 잊은 채 받은 것을 ‘우리 것’으로 여기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 호세마리아는 물질적 재화뿐 아니라 “지적 재능, 건강, 명예, 고귀한 포부, 승리와 성공”에 대한 집착에서도 벗어나라고 권고합니다.[3]

이 지점에서 두 성인은 같은 자유를 지향하는 듯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를 시네 프로프리오로, 호세마리아 성인은 집착에서 벗어남으로 표현합니다. 서로 다른 두 표현이 가리키는 것은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았음을 알기에 아무것에도 매달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실천 방식은 다릅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작은형제회 수도자들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택합니다. 반면 성 호세마리아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일하고 가정을 부양하며, 재산을 관리하고 사회적 책임을 맡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물을 사용하면서도 집착에서 벗어나 살아가도록 권고합니다. 그래서 성인은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것을 가졌는지, 저것이 없는지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4] 재물은 수단이므로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며,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차이가 두 성인의 공통점을 더욱 뜻깊게 만듭니다. 복음적 가난을 가늠하는 첫째 기준은 우리가 가진 것의 양이 아닙니다. 그것을 얼마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며, 또 내어 줄 수 있는지가 그 척도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시네 프로프리오는 인간관계에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는 형제가 내 기대에 맞춰 주기를 요구하거나, 그를 판단하거나, 내 뜻을 강요하면서 그를 ‘내 것’으로 삼으려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참된 가난은 스스로를 낮추고 섬기며,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데서 드러납니다. 성 호세마리아에게도 집착에서 벗어남은 반드시 너그러움으로 이어집니다. “검소하게 살되, 다른 이들에게는 매우 너그러워야 합니다.”[5]

결국 두 성인 모두에게 그리스도교적 가난은 세상의 것들을 업신여기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풍요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서 비롯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다음 말씀보다 이를 더 잘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겨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께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받아들이시도록 하십시오.”[6]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영적 체험을 하나로 이어 주는 것은 바로 이 복음적 역설입니다. 복음적 가난을 택하는 까닭은 세상의 것을 업신여겨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신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참된 보물이 되실 때, 사물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습니다. 이제 그것은 붙들어 두어야 할 것이 아니라, 받아서 잘 돌보고 함께 나누며 마침내 돌려드려야 할 선물입니다.

프란체스코 이엘포(Francesco Ielpo) 신부는 작은형제회(OFM) 소속으로, 성지보호구장이자 시온산 수호자입니다. 2025년 6월, 이 지역의 작은형제회를 6년 동안 이끌도록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6월 24일 레오 14세 교황의 인준을 받았습니다.

글: 프란체스코 이엘포 신부, 성지보호구장

[1] 성 프란치스코, 『인준받은 회칙』(Regula Bollata), 1,1항. “작은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다음과 같습니다. 곧 순종과 무소유와 정결의 삶을 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2] 성 프란치스코, 『인준받지 않은 회칙』(Regula non Bollata), 17,5-7.17-18항.

[3] 성 호세마리아, 『하느님의 친구들』, 114항.

[4] 성 호세마리아, 『하느님의 친구들』, 118항.

[5] 성 호세마리아, 『하느님의 친구들』, 123항.

[6]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전체에 보내신 편지』, 29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