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푸스데이 단장 몬시뇰의 2020년 10월 28일 사목교서

페르난도 오카리스 몬시뇰은 오푸스데이의 정신과 그것이 각 개인의 환경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약간의 성찰을 합니다.

Opus Dei - 오푸스데이 단장 몬시뇰의 2020년 10월 28일 사목교서

차 례

I.소명의 선물

최고의 은총
동일한 정신
동일한 사도직 사명
동일한 수단
통일성과 다양성
우리의 삶 전체

II.오푸스데이에서 남녀 “누메라리오”의 소명

준비된 마음
십자가에 못박힌 그룹

III.오푸스데이에서 여성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의 소명

개인과 가족의 우선순위
모든 환경으로부터
사도직중의 사도직

IV.오푸스데이에서 남녀 아그레가도의 소명

고유한 특성
그리스도의 향기

V.성직자치단의 사제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정신

VI.“누메라리오”와 “아그레가도”의 독신사도직

VII.오푸스데이에서 남녀 “수페르누메라리오”의 소명

하느님의 최고의 은총
결혼과 가정
우리 주위에 그리스도적 영향을 끼칩시다

VIII.오푸스데이에서 성십자가 사제회의 아그레가도”와 수페르누메라리오” 소명


2020. 10. 28. 로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예수님께서 나의 자녀들을 잘 보살펴 주시 길 바랍니다

1. 오푸스데이의 탄생 백 주년을 눈앞에 두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의 눈앞에 두고 계시는 광대한 사도직의 파노라마를 생각하면서, 호세마리아 성인의 가르침인 거룩함에 대한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우리 각 개인에게 어떻게 실현 되는지를 우리모두 천천히 그리고 깊이 있게 성찰해 보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아버지 성인께서는 이러한 소명의 보편성,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향한 충만한 사랑이 이 세상 한 가운데서, 빛과 어둠이 있는 우리의 현실세상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I. 소명의 선물

최고의 은총

2.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뽑으셨으니 당신 사랑으로 우리는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에페 1:4). 이 선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젊은 영으로 길러진 우리의 책임감은 우리가 세상을 성화 시키는데 협력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푸스데이에서 특별하게 훈련된 우리는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과 친교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함께 관대하게 응답하도록 노력해 봅시다.

“수 없이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우리의 아버지 성인께서 평소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한계와 실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우리의 여정을 영원함의 분위기로 가득 채우는 이 부르심의 위대함을 한번 바라봅시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우리 소명의 최고의 은총”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이 아닌 영구적인 은총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안에 불이 켜진 것과 같은 삶의 새로운 버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신비스러운 충동, 하나의 눈사태를 일으키는 듯한 생명력입니다.”1 요컨대 그것은 우리의 삶 전부를 수용하고 빛과 강인함을 스스로 보여주는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하는 빛과 부르심에 ‘예’ 라고 응답할 수 있는, 그리고 그 길을 걸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한 편지에 “우리의 소명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그리고 그것의 원천이고 당사자의 관대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 은총으로 움직인다고”2 쓰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결정적인 역할 앞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응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소명이란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완벽하게 하는 은총의 구성요소여야 합니다. 각자의 소명을 분별하기 전 단계에서 그것을 줄 수 있고 주어야 하는 사람들의 충고를 따라 빛에 의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동일한 정신

3. 하느님의 일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각 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동일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정신, 동일한 사도적 미션 그리고 동일한 방법으로 오푸스데이라 불리우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합니다.

우리 모두는 일상을 성화시키고 특별한 방법으로 일하는 그러한 동일한 정신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신성시할 수 없는, 성화시킬 수 없는 고귀한 인간의 일은 없습니다. 우리와 다른 이들을 위하여 일을 성화시키고 거룩하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없습니다.”3 이 정신은 우리가 삶의 매 순간 마주치는 모든 일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일의 성화는 예수님과 동일시하기 위한 거룩함을 찾는 하나의 축, 우리의 응답을 은총으로 돌리는 축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상의 현실에 긍정적인 시각을 줍니다. 우리는 세상의 선과 반대되는 것을 무시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사랑합니다(1요한 2:15). 그 관심사 또한 우리의 관심사인데, 만약 그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더 쉽게 사랑하게 한다면, 그것의 슬픔은 우리가 그것을 더욱 사랑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의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와 책임감을 불러 일으킬 것인지: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3).

우리의 일을 성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거룩해지는 하나의 축이 되고,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생각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은총의 성화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성 삼위일체의 성스러운 삶, 즉 성부 하느님의 자녀로서, 성자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성 삼위일체의 성스러운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유로운 결정으로 타고난 인간의 존엄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올려졌습니다. 죄악이 이러한 경이로운 현실을 파괴하는 동안,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말씀을 더 가까이 나누게 하여 더욱 놀랍게도 그것을 회복시켰습니다.”4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우리 삶 전체의 기본 형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갖는 평정심으로 삶을 살아가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지니는 이성으로 결정을 내리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갖는 평온함으로 고통과 걱정에 직면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들에 고마워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줄 것입니다. 요컨대 “모든 생각, 모든 갈망과 애정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5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형제애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로마 8:16). 이 증언은 형제애적 사랑을 가져오는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자녀로서 사랑입니다.6 “다른 사람들은 다른 원천에서 마십니다.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형제애적 우물은 그리스도 복음서 안에 있습니다.”7

요컨대, 우리의 영적 삶의 중심이자 그 원천은 성체성사의 희생입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근원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에 희생되신(1코린 5:7) 십자가의 희생만큼 자주 제대 위에서 기념되는, 우리의 구원사업이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8

그러나 우리의 삶이 진심으로 개인적으로 성찬에 집중되어 있는지는 하느님의 은총에 부합하는 우리의 개인적인 일치에 달려 있습니다. “힘겹게 투쟁하면서, 제대 위에서의 거룩한 희생이 진심으로 당신의 내적인 삶의 중심이자 뿌리가 되어, 당신을 온 종일 경배하는 행동으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당신이 봉헌했던 미사는 확장되어서 다음 것을 준비할 것입니다. 당신은 온종일 열망이 넘치는 경배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감실을 방문하여 당신의 직업적인 일과 가정생활을 봉헌하게 될 것입니다.”9

우리의 사도적 미션이 성장하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인 성체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과 희망의 중심이 감실이라면, 나의 자녀 여러분, 그대는 거룩하고 사도적인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것입니다!”10

하나의 동일한 사도직 소명

4. 우리는 모두 동일한 사도직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성화시키고 이 세상을 그리스도적 방법으로 변화시키려는 교회의 사명에 협력하기 위하여 동등하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오푸스데이의 영성을 사는 것이죠. 오푸스데이의 사명은 교회의 큰 사명 안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 사명이란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지만, 우리에게 친밀함으로, 말씀으로, 힘으로,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주님의 아낌없는 사랑을 우리가 명백한 증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11

오직 교회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몸은,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세상이 열매를 맺는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힘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니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교회의 걱정과 고통을 공유합니다. 우리들 각자는 바오로 성인의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2 코린11:29).

5. 특별한 활동영역에서 우리의 사도직은 제한적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함께 라면 우리는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적 봉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오푸스데이의 미션을 충분히 수행합니다: 우리 가족 안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안에서, 친구나 지인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오푸스데이에 관한 호세마리아 성인의 주장을 우리는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결단과 성령의 움직임에 인도되어 일차적인 책임감과 주도권에 근본적인 중요성을 자유롭게 부여하지만 조직된 구조에는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습니다.”12 이것 또한 오푸스데이의 주된 사도직이며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우정과 신뢰의 사도직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사도직과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사용하는 도구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누메라리오, 아그레가도, 수페르누메라리오, 그리고 또한 모든 협력자들에게 짐과 명예 - onus et honor – 가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13 우리가 누구든, 우리는 성인들과 통교하면서 사도직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또한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교회안의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면,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 누룩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위로가 될 것입니다.”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일한 수단

6. 우리가 사도직을 성취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길입니다. 오푸스데이 안에서 우리 모두는 제자와 사도로서 그분을 따르는데 동일한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일한 생활규범과 관습, 영성지도와 교리교육 등 말입니다.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항상 동일합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한 가운데에서 묵상하는 삶으로 함께 성장하는 것, 성사, 특별히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풍요로움을 키우는 것 들, 그것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수단(끝이 아닌)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삶입니다.”15

독실하게 실천하는 행동은 우리의 삶 전체를 포용하고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만남으로 이끌어주는 애정 어린 대화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삶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려고 우리를 기다리는 순간입니다. 그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우리가 자유를 찾는 그 무엇과도 같은 것입니다. “성화는 탄력 있는 근육의 유연함과 같고, 성화는 판지처럼 뻣뻣하지 않고, 웃는 법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희망을 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에 따라 우리는 언제나 완벽하게 너그러움을 추구하면서 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성스럽다는 것이 점점 더 많은 일을 하거나 우리가 스스로 정한 어떤 기준을 충족시키려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오로 성인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갈라 4:19), 거룩하게 하는 방법은 성령의 움직임에 응대하는 것입니다.

통일성과 다양성

7.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오푸스데이를 하나의 “싱글 섬유원단” 으로 설명하셨는데, 그것은 우리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푸스데이 안에서는 1등이나 2등 멤버가 없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명이 다른 방법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행하는 직업적인 유형 때문도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현실에서 그렇듯이, 이 세상에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사랑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하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이러한 소명에 대한 일치를 “우리의 것은 오직 하나의 신성한 소명, 오직 하나의 영적 현실이며 각 개인의 상황과 삶의 상태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맞추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동일한 소명은 다른 상황들이 강요하는 자연스러운 한계 내에서 헌신적인 평등을 필요로 합니다.”16

당연히, 오푸스데이안에서 동일성과 다양성은 남성과 여성회원에게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각 개인에게 적합한 활동의 분리와 함께 영적인, 사도적인, 방법적인 일치가 있습니다. 더욱이, 오푸스데이 전체에서 흔히 있는 일은 중앙과 지역적인 레벨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방향이 일치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통치기구는 동일한 주도권과 책임을 갖습니다. 법규정에 따라 그들은 확립된 특정한 중요 안건에서 단장이나 지역 대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는 동일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전체

8.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오푸스데이에 더 전념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헌신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오푸스데이라는 존재와 활동에 있어서 단지 또는 심지어는 특정한 직무나 사도직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명 그리고 그것에 해당되는 미션은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지 그것의 일부분만을 아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사도직을 행하는 기회이고 수단입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우리의 소명이 “완전한 직업과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고 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그녀의 결혼 상태가 어떻든 간에, 오푸스데이의 정신에 따라 그들은 자신의 직업과 국가에 대한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푸스데이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것은 어떤 활동의 선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버리고 어느 정도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푸스데이는 우리의 삶 전체에 접목되어 있습니다.”17 완전한 직업상의 만남, 온전한 헌신으로 나 자신의 삶 전체를 끌어안습니다. 모든 일에서 자유로운 내적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복자 돈 알바로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오푸스데이는 큰 탄력을 요구합니다.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규칙을 최소한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2 코린 3:6).”18

9. 이 편지에서 나는 또한 당신이 받은 소명의 선물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당신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기쁜 감사, 하느님께서 오푸스데이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성직자치단의 충실한 각 개인들이 자신의 소명을 살아 내면서 어떻게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지는지를 볼 때에도 역시 기쁘게 감사드려야 합니다: 누메라리오(여성의 경우 어시스턴트 누메라리 포함), 아그레가도, 수페르누메라리오, 그리고 성십자가 사제회의 사제들.

이러한 맥락과 함께 몇 개월 전에 제가 쓴 글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약점과 타인의 경험에 비추어서 우리 자신을 실망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노동의 정신이 우리와 직면하고 있는 멋진 광경에 비하면 말입니다. 우리가 삶의 이상과 열악한 현실사이에서 불균형과 마주치면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좌절 앞에서, 날마다 성령의 은총의 힘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합시다.19

II. 오푸스데이에서 남녀 누메라리오의 소명

10. “오푸스데이의 중심에서 누메라리오들은 거룩하게 하기위한 특별한 사명을 띄고 그들의 형제자매 바로 발 앞에 있습니다. 누메라리오들은 개인적으로 욕심 없는 희생을 통해서, 필요한 경우 형제자매들의 심신을 돌보고,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을 돕고 또한 형제자매들이 사도직에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입니다.”20 이와 같이 누메라리오들은 형제 자매들에게 자신의 삶을 내어줍니다. 그들의 소명은 “모든 사람들이 영적으로 활동하고 깨어 있게 함으로써 형제애와 단결이라는 아주 특별한 상황을 가져옵니다.”21

오푸스데이에서 누메라리오들의 소명은 사도적 독신주의라는 선물과 함께 그들이 교리교육 및 사도직에 온전히 투입될 수 있다는 것으로 정해집니다. 이러한 가능성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특별한 사명으로 이해되고 수행되며, 원칙적으로 누메라리오들은 오푸스데이의 중심에 살고 있다는 사실로 촉진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더 나은 많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살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곳에 있다는 것을 항상 알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정체성이나 사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준비된 마음

11.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누메라리오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진심으로 그들에게 준비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오푸스데이에 필요한 과제를 기꺼이 맡으려는 의지와 결합되는 삶을 살기위한 사실상의 자유로움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준비된 마음으로 교리교육과 사도직이라는 과제에 참여하는 동시에 그들의 재능이나, 학업과 선호도에 맞는 전문적인 일에 전념합니다. 이러한 것은 복음의 기쁨을 가져오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푸스데이의 센터 행정, 교리 형성교육, 행정관리 업무, 사도직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사도직을 위한 협력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합니다.

반면에 우리의 이러한 준비된 마음은 내가 수행하라고 요청을 받은 일만을 행하는 수동적인 태도에 한정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생각해 볼 때, 사도직의 사명을 받드는 일에 쓰이도록 온전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 조치를 취합니다”: 우리는 솔선수범하여 자신을 봉헌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준비된 마음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속도로 움직이려는 습관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준비된 우리의 마음이 오직 사랑에만 묶여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사는 곳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있더라도, 직업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가 사는 장소 등에 묶이지는 않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봉사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으로,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오푸스데이에서 행정적인 관리업무는 누메라리오들에게 떨어질 것이라고 예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헌신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의 삶을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정관리 업무나 교리양성 과제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오푸스데이에서 더 유용하거나 더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이것은 하비에르 주교님께서 한 편지에 쓰셨던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 중 몇 명은 그들의 직업적인 활동을 줄이는 방법 외에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 심지어는 그것을 완전히 떠나거나, 적어도 당분간 떠나는 것 말고 - 영성생활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돕고 사도직 임무를 지휘하는데 자신들을 헌신하기 위해서 말입니다.”22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여러 장소에서 이 모든 내부적인 배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은 신성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메라리오들은 홀로코스트에서 하느님께 직접 그리고 즉시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아무 제한도 없이 모든 것, 그들의 온 마음, 그들의 활동, 그들의 재산과 명성을 내어 놓습니다.”23 정확하게는 오푸스데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제한되는 것 없이,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활동을 자유롭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때로는 주어진 시간에 특정한 임무나 과제를 맡을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제한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가진 그들의 내적 성향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룹

12. 호세마리아 성인의 말씀을 기억해 봅시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업(his work)이 단지 일시적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것이 불멸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오푸스데이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룹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성 십자가는 항상 복음과 함께, 행동하는 사도직으로 기도와 희생의 달콤한 열매를 생산하면서, 우리를 견디게 할 것입니다.”24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룹이 누구인지는 내비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이 단락에 관한 언급으로, 돈 알바로 복자께서는 오푸스데이안에서 자신의 소명을 사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이미 발표되었거나 암시되어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문맥상, 이 경우에 그것은 누구보다도 누메라리오를 가리킨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다른 장소에서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특별히 십자가에 못박힌 성직자들을 언급하셨습니다. 사실 아그레가도와 수페르누메라리오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본인의 심오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으로 표현하십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25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누메라리오들이 다른 유형의 활동에 전문적으로 헌신하기 위하여 이전 직업을 잠시 떠나는 것은 때때로 힘들 수도 있지만(센터의 관리업무, 행정, 교리교육, 사도직 활동의 방향설정이나 협력 등), 그것은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가장 심오한 장소이며 위대한 원천이 되는 십자가와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가끔 예기치 못한 초자연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13. 우리가 오푸스데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청할 때, 우리는 이해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유로이 그것을 결정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유용성 있는 태도는 하느님의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합니다. 동시에 영적인 삶에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희생적인 성장은 시간과 함께 효과적으로 커집니다. 이러한 성장은 우리의 교리교육, 내적 생활 그리고 다양한 자기 희생적인 경험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계획이나 과제 등의 작은 변화 안에서, 필요하다면 이러한 것들은 우리 영혼이 더 큰 변화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주요한 과제나 변화에 관한 것들에 있어서, 관리자는 당연히 먼저 관련된 사람들의 의견을 항상 구합니다. 비록 후자가 그들이 볼 수 있는 어떤 어려움들을 간단하게 지적하는 동안, 하느님과 영혼에 대한 사랑에서 필요한 것들을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 의지를 유지하려고 동시에 노력합니다.

내가 주장하려는 결정적인 것은 각 개인이 우리 형제자매들과 그리스도교 봉사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습관적으로 헌신하는 내적인 성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익어 이미 수확할 때가 되었다 (요한 4:35).

이러한 태도는 건강한 직업적인 야망과 완벽하게 양립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초자연적인 가족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연스럽고 책임감 있는 관심사와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타인을 위한 교리교육에 우리 자신이 헌신하는 것을 오푸스데이에서 요청한다면, 때문에 전문적인 직무를 변경하고자 하는 것은 정확하게 당사자의 의지입니다. 동료들처럼, 우리의 소명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하느님께 가져다 드리는 것을 돕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도전에 참여하려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확신으로 손에 손잡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푸스데이안에서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교리교육과 함께 매우 효과적으로 행해집니다.

누메라리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사랑으로 사도 독신주의라는 선물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사는데, 그것은 당신들에게 영적인 아버지의 능력과 함께 모성의 면모를 열어줍니다. 여러분은 세상 한 가운데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살아있는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과 세상 안에서, 예수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러분은 초자연적인 가족을 보살피고 형제자매들을 돌보기 위해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매우 넓은 시야를 가졌습니다: 당신의 헌신적인 삶과 함께, 때때로 숨겨져 있고, 인간적인 탁월함이 없이, 당신의 많은 결실과 함께 세상 구석구석에 도달합니다.

III. 오푸스데이에서 여성인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의 소명

14.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인 여러분은 섬기는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 센터를 그리스도인의 가정 분위기로 조성하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전문적인 행정관리 업무를 통하여 이 일을 실현시킵니다. 여러분도 잘 알 듯이, 그것은 단지 우리들 사이에서 할 수 있고 또는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하는 일련의 물리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획하고, 체계화하고, 조정하는 것들로 그 결과는 바로 가정입니다. 모든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환영받는, 인정받는, 보살핌을 받는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는 그러한 가정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 과제는, 오푸스데이의 전체적인 인상과 영성에 있어서 구성원 각 개인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성들은 “대체할 수 없는 지지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이 큰 힘을 감지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의 원천이 됩니다.” 26

개인과 가족의 우선순위

15. 오푸스데이안에서 우리의 삶을 돌보고 봉사하는 여러분들이 하는 일에 따라서 각 개인들에게 당신 과제의 초점과 우선 순위를 만듭니다. 오푸스데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은유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오푸스데이안에서 관계의 끈끈함이 피보다 더 강하다고 우리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자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애정과 상호간의 사랑의 측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가끔 센터 관리업무는 우리의 성모님께서 하신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묵상하셨습니다. 그래서 오푸스데이에서 “가정적인 분위기”는 나자렛 가정의 분위기(우리가 본적은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의 연속선상에서 복제품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센터의 관리업무(administration)는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로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는 아버지나 아이들처럼 그 가정의 필수 구성원인 자매와 어머니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러분은 오푸스데이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돌보는 직을 맡았습니다. “만약 나에게 가능했다면, 나는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고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습관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나의 “작은 딸”이라고 부른 것은 일이 경미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오푸스데이에 마지막으로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오푸스데이에서 큰 계획을 수행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성숙한, 확고한 믿음에 특별한 방법으로 의존하셨습니다.

모든 환경으로부터

16. 수많은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들이 각계각층 출신이라는 점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때때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누메라리오 또는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가 되라고 요구 하시는지 아닌지를 확신하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요소들 중에서 한가지 명심해야 할 요소는, 사람을 섬기고 돌보는 일에 더 직접적인 초점을 맞추려 하는 사람의 성향입니다. 궁극적으로 각자의 분별력은 영적인 방향과 책임자로부터 받은 지도와 함께 물론 각 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관리업무는 가정에 따뜻함을 주고 유지하는데 커다란 품위를 지닌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관리업무를 맡은 사람들은 “진실되고 고귀한 직업이기 때문에, 이 직업을 통해 가정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친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길을 통해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다른 어떤 전문가들보다 더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합니다.”27

사도직 중의 사도직 (Apostolate of apostolates)

17.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관리업무를 사도직 중의 사도직이라고 여길 정도로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 직무가 없었다면 오푸스데이는 진전될 수 없었습니다.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의 직무는 그 자체가 매우 직접적인 사도직이기 때문에 이것은 처음부터 사도직 중의 사도직입니다. 그 자체로서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이 일은 물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무엇보다, 기도로 바뀌는 이러한 직무는 센터 안에서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의 영적 형성에 직접 영향을 끼칩니다. 여러분이 만들어내는 환경은 성격형성 등에 중요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여러분이 훌륭하게 수행하는 직무는 우리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인지하고, 우리에게 효과적인 소통을 행동으로 하게 합니다. 실체가 있는, 일정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집안 일에 가능한한 가장 큰 전문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마치 각각의 내 자녀들이 자신의 과제를 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스러운 영역으로 높임으로써 당신의 직업적인 역량을 직접 사람들을 봉사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모든 사람들의 전문적인 일을 인도적으로 그리고 영감을 주는 요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로, 관리업무직은 다른 사도들의 사도직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사도직 중의 사도직입니다. 그것은 각 사도들에게 수액과 자극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을 하느님과의 대화로 바꾸려는 정도까지 노력합니다. “당신이 관리업무직을 행할 때, 당신은 모든 사도직에 참여하고 오푸스데이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협력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수행한다면, 여러분의 일에서 훌륭한 진전은 필요한 조건이고 오푸스데이 전체에 가장 큰 자극이 됩니다.”28 관리업무직을 맡을 사람이 아직 없을 당시에, 한 국가나 한 도시에서 사도직을 시작했을 때 매우 눈에 띄었습니다. 한 명이 있을 때, 또한 눈에 띈 점은 오푸스데이가 더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변화됩니다. 게다가,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들이 가능한한 다른 많은 사도직 활동에도 참여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또한 관리업무는 오푸스데이의 중추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관리업무직은 몸 전체를 지탱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똑바로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이 직무를 기억하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연히, 관리업무직을 맡은 다른 누메라리아들 또한 이러한 중추와 사도직을 보충합니다.

나의 딸 누메라리아 아욱실리아르들, 오늘날 개인주의와 무관심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진정한 가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미션은 흥미진진 합니다. 사랑으로 수행될 때 여러분의 임무는 모든 곳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IV. 오푸스데이에서 아그레가도의 소명

고유한 특성

18. 아그레가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로 당신 자신의 직업과 함께 가정환경에서 깊은 개인 사도직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업(Opus Dei)을 수행합니다. 오푸스데이에서 다른 신앙인들을 돌보기 위하여 누메라리오들과 함께 일하면서 말입니다.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의 사도직 활동에 대한 여러분의 자유로운 특성을 완전하게 보여주면서, 독신자로서 모든 힘을 다하여 직을 수행합니다. 그것이 바로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당신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부럽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여러분의 헌신은 나의 것과 같이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29 무슨 뜻이었을까요? 중요한 것은 세상의 한 가운데서, 활동의 한 중심에서, 일, 가족, 바로 그곳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리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여러분은 상당히 다양한 환경에 처해있고 온갖 종류의 직업적인 환경에서 움직입니다. 당신의 삶은 오푸스데이의 정신을 구현하고 전파하는데 무한한 가능성이 모든 분야에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출신이 매우 다양해서 전체 사회조직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각 장소에 오래 머물 수 있기 때문에, 그 곳에서 더 쉽게 사도직을 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방식은 매우 다양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여러분의 가족과 직업, 이웃, 살고 있는 마을이나 도시 또는 나라에서 아주 안정적인 방법으로 사도직을 행할 수 있게 합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여러분은 훨씬 더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더 깊이 있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서, 세상 한 가운데서, 마음이 분산되지 않고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우리의 아버지께서 누메라리오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아그레가도의 수를 원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푸스데이에서 핵심은 우리 일상의 한 가운데서 행하는 우리 각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오푸스데이를 위하여 누메라리오 또는 아그레가도가 되기를 원하는지 하는, 그러한 망설임에서 자신에게 가능한 소명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누메라리오가 되는 것이 아그레가도가 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소명을 분별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오푸스데이의 소명은 명시되는 방법이 아주 분명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한 사람이 수페르누메라리오가 될 수 있지만, 아그레가도 또는 누메라리오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덜 명백한 다른 사례들이 있고 최종판단은 관련자의 몫입니다. 단 하나 그리고 공통된 소명 안에서, 하느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하는 그러한 경험은 그/그녀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것은 신중한 문제이므로, 영적지도를 통하여 조언을 구하거나 또는 그/그녀를 잘 아는 책임자와 함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을 의논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19.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특별히 아그레가도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그들은 일을 통하여, 모든 계층에서, 모든 장소에서(때때로 공동 사도직 안에서), 세상 구석구석의 가장 다양한 곳에서, 어디서든 함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적, 개인적으로 동일한 직업적 배경과 동일한 사회적 직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보통 그들의 직장이나 거주지를 옮길 필요없이 이루어집니다.”30 저 스스로 돈 하비에르 단장님께서 성 호세마리아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그레가도 여러분, 여러분은 장소를 옮길 필요없이 여러분의 평범한 삶, 직업적인 삶과 가정생활의 성화를 통하여 오푸스데이가 무엇인지를 특별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그레가도 여러분, 여러분은 때때로 교육시설의 법인체에서 또는 다른 사도직에서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푸스데이의 미션에 참여하는 주된 방법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당신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당신은 이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만, 당신의 주된 업무는 당신의 평범한 삶을 성화시키는 것이며, 우정과 신뢰로 사람들을 대하고, 적절하게 당신의 친구를 동행하면서 성 라파엘과 성 가브리엘의 일 즉, 교리형성 교육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반죽 안의 효모가 되라고 부르십니다. 거듭 말하지만, 당신의 사도직은 당신이 속한 평범한 상황과 직업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V. 성직자치단의 사제

20. 오푸스데이안에서 누메라리오와 아그레가도 가운데 사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성직자치단의 신학적, 법률적 현실안에서 평신도에게 필수적입니다. 이 부르심은 오푸스데이에서 최고의 소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의무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마음을 양탄자처럼 바닥에 내려 놓아야 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그들의 형제자매가 부드럽게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31

성찬례가 중심인 교회안에서 사제직과 함께 성직자치단의 사제는 다른 신자들과 그들의 사도적 활동에 대한 사제의 보살핌의 일환으로 미사 봉헌에 자신을 헌신합니다. 특별히 성직자치단의 사목적인 미션에 따라 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하면서, 영적 지도와 교리형성 교육의 광범위한 과제와 함께 그 무엇보다도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행하는데 관심을 가집니다.

모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직자치단의 사제는 특정 성직자 스타일을 뜻하는 오푸스데이의 정신으로 삶을 삽니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미사안에서 세상적인 톤으로 묵상합니다; 그들은 평신도들의 책임과 자주성을 존중하고 증진시키기 위하여 매우 신중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행동합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혼의 자유인 사랑이라는 것을 심어줍니다; 그들은 풍성한 사제직을 확립하기 위하여 자주적으로 행동합니다. 당연히, 가능한한 그들은 또한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교구의 활동에 협력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정신

21. 특별히 아들 사제들에게 쓰셨던 한 편지의 서두에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나의 아들 사제들이여 당신들은 받들려고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먼저 사제직은 봉사하는 미션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봉사’라는 이 말은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 그리고 여러분이 존재한다는 모든 것을 다 표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선하고 성실한 갈망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히 선을 행하는 일에 몰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형제자매들과 같이, 저에게는 큰 긍지와 위로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gaudium meum et corona mea, 나의 기쁨이며 화관(필리 4:1)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32

사제로서 여러분의 봉사정신은 여러분을 형제들 사이에서 한번 더 느끼게 하고 실제 그렇게 하도록 합니다. 오푸스데이는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오직 한 계급”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합니다.”33 동시에, 여러분의 모범과 언어는 다른 사람들이 거룩함을 갈망하도록 일깨우기 위해 알람 시계처럼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푸스데이에서 일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적절하게 인간적인 수준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의 외모와 대화 등에 있어서 성직자의 진지함 말입니다.

나의 자녀 여러분,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일 것입니다.34 사제인 여러분은 스스로 빛나지 않고 리더의 역할을 하지 않도록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리더의 역할과 빛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려고 노력하면서 밀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빛나는 것은 여러분의 자매와 형제들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미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일관된 삶 안에서, 기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희생하는 그러한 특별함이 필요합니다.

VI. 누메라리오와 아그레가도의 독신사도직

22. 오푸스데이의 소명 안에서 누메라리오와 아그레가도에게는 독신사도직이 수반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일치를 통하여 그 선물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랑중의 사랑인 우리 독신사도직의 존재이유는 사랑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십시오.”35. 그러므로 우리는 독신사도직을 단지 또는 주로 기능적인 선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즉, 우리가 오푸스데이에서 더 많은 일에 전념하거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독신사도직이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거나 쉽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동기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삶과 동일시하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독신사도직은 신앙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오직 하느님에게서 이끌어 낼 수 있는 이러한 삶의 형태안에서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결혼과 가족을 포기하는 것에 바탕을 두는 우리의 삶은, 하느님을 현실에서 맞이하고 체험하여, 하느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36

독신 사도직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분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념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헌신적인 삶의 테너에 주목해야 합니다. 마치 배우자에게 충실한 약속을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수 없는 결혼한 사람의 것과 유사합니다.

급진적인 삶을 살 때 소명은 때때로 세상의 기준과 충돌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 호세마리아의 좀 더 일반적인 말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교도적이거나 또는 이교도의 환경에서 제 삶이 주변환경과 충돌할 때 저의 자연스러움이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하고 나에게 질문합니다. 그러면 의심할 여지없이 여러분의 삶은 그들의 삶과 충돌할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 믿음은 오푸스데이로 확인되었습니다! - 당신에게 바라는 자연스러움이 바로 그것입니다.”37

독신사도직의 선물은 하느님 사랑의 특별한 표시라는 우리의 확신을 여러분에게 다시한번 일깨워 드립니다. 그것은 또한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더 큰 능력을 가져오는 예수 그리스도와 특별한 일치로의 부르심 입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말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독신사도직은 육신적인 친자관계와 모성애를 포기함으로써 영적으로 더 큰 모성애나 부성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독신자이든 결혼한 사람이든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그리스도와 더 큰 일치를 이루면서요. “세상에서 결혼도 하느님의 길이기 때문이지요.”38

VII. 오푸스데이에서 남녀 “수페르누메라리오”의 소명

하느님의 큰 은총

23. 오푸스데이에서 대부분의 회원은 수페르누메라리오 여러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삶의 모든 차원을, 특별히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을 성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1947년,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어떤 묵상에 대한 응답으로 수페르누메라리오를 받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스페인의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셨습니다: “저는 수페르누메라리오에 대한 당신의 메모를 읽었습니다. 다음주에 당신의 메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지금 우리가 그 사실을 놓칠 수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특정 협의회의 한 신사분이 새긴 글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39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은총, “큰 은총”을 베푸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것은 오푸스데이에 대한 소명입니다. 수페르누메라리오의 소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걷는 자신의 거룩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특별한 도움을 줍니다. 대부분의 경우, 세례와 혼인성사, 가족을 형성할 때 특정되는 길들입니다.

그 부르심은 선택을 전제로 하고, 제가 전에 기록한 바와 같이, 교회안에서 하느님의 일(Opus Dei)이 되고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사명을 띄고 있습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성 가브리엘 작업의 훈령(Instruction on the Saint Gabriel Work)을 참조하라고 수페르누메라리오들에게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나는 지금 위대한 남녀들로 이루어진 이 팀이 활동중인 것을 보고 있습니다. 각자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세상 한 가운데서, 정확히 그들이 있는 곳에서 견고하고 경건한 지식과 함께 매순간의 의무를 즐겁게 수행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입니다.”40 그러므로 우리의 소명을 일종의 요구 또는 의무로 생각하지 맙시다(물론 의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하느님의 선택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큰 선물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드는 동시에 그들을 진실한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누룩이 되는 것입니다.”41 아킬라와 프리실라가 코린토(사도 18:2)에서 바오로 성인을 환영했던 것처럼 그리고 아폴로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사도 18:26, 로마 16:3, 1코린 16:19). 동시대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던 최초의 수많은 신앙인들처럼 그리고 동시에 어둠에 처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던 것입니다.

“수페르누메라리오들 중에는 모든 계층의 사회적 배경과 함께 직업인, 전문 직업인들이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환경과 상황은 나의 자녀들로 인하여 거룩하게 됩니다. 그들은 세상안에서 자신의 삶, 자신의 상황에서 ‘충만한 소명’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스스로 헌신합니다.”42 우리의 아버지께서 얼마나 소명에 대한 완전함을 주장하는지 주목하십시오. 다양성에 관한 한, 오푸스데이는 일상에서 거룩함과 사도직의 삶을 사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무엇이든 정직하고 인간적인 것들을 인정하는 그러한 평범한 삶입니다.

결혼과 가정(Marriage and family)

24. 오푸스데이 안에서 수페르누메라리오의 첫번째 소명은 가정적인 분위기를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첫번째 사도직은 가정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43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수페르누메라리오의 가정은 “밝고 명랑하며 복음전파와 메시지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것을 꿈꾸셨습니다.”44 그것은 여러분이 사회에 남긴 유산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편지를 쓰신 것입니다. 오푸스데이가 당신에게 주는 교리 형성교육은 당신 가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진가를 알아보게 하고, 가정을 형성하는데 수반되는 초자연적인 일과 부부의 의무안에 숨겨져 있는 성화의 원천을 수반합니다.”45

무엇보다, 여러분은 다른 가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라고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가정생활을 더 그리스도교적으로 이끌어가도록 돕고, 젊은이들이 결혼준비를 잘 함으로서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을 쏟고 그리고 또 다른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할 수 있게 해서 그 결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많은 소명과 독신사도직이 생겨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혼이거나 과부 또는 물론, 자녀가 없는 커플일지라도, 여러분은 가정에서 첫번째 사도직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어떤 식이든 항상 양육할 가정환경을 가질 것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주위에 그리스도적 영향을 끼칩시다

25.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직업과 사회적인 환경 안에서 우정과 신뢰의 사도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산하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큰 움직임을 여러분에게서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서 사회구조를 개선하는데 기여하고, 그들을 훨씬 더 인간적이고 하느님 자녀로서 적합한 삶을 살게 하고, 우리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움직이고 일하는 직장에서 전문직업, 기관의 구조, 인적구성을 신앙적인 방법으로 지향하려고 노력하는 가장 유익한 사도직을 행하고 있습니다.”46

그래서 수페르누메라리오의 소명과 그것을 수반하는 미션은, 어떤 교리 형성교육이나 어떤 사도직 활동에 참가하는 것 등, 독실한 실천의 삶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제한이 없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러분 삶의 전체를 아우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삶의 모든 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이 될 수 있고, 사도직의 한 형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라틴어로 오푸스데이)을 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과 성인들의 통교를 통하여 온 세상에서 실천하도록 협력할 것입니다. 또는 우리의 설립자 성인께서 문구로 새겨 상기시켰듯이,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일(오푸스데이)이 되어(by each one being Opus Dei) 오푸스데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푸스데이를 자신의 것으로 느낄 때, 여러분은 자신을 교리교육으로 형성하고,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데려오고, 여러분의 믿음을 설명하는데 활기찬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오푸스데이에서 받는 교리 형성교육은 유연합니다. 그것은 손장갑처럼 당신의 개인적, 사회적인 상황에 맞춥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정신과 단 하나의 금욕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경직됨이 없이 실현되고 또 되어야 합니다.”47

경직성을 피하는 이러한 유연성은 수페르누메라리오가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서 영웅적이거나 근본적인 요구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본질인가를 알고 여러분이 처한 다양성에 너무 많이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본질은 하느님의 부르심,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미션입니다. 핵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고, 그곳이 어디든 그리스도를 함께 데려가는 것입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수페르누메라리오들은 오푸스데이의 서비스에 자신들을 부분적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48 라고 쓰셨을 때, 성인께서는 여러분이 오푸스데이의 어느 한 부분만 행하라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사도직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평생동안 오푸스데이를 수행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께서 수페르누메라리오의 사도적 미션에 대해 말씀하실 때 또한 글로 쓰신 이유입니다. “이 사도직은 산발적이거나 우연한 방법으로 행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그리고 소명과 함께 행해지고 그것은 평생동안 이상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49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진취적으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부채질하면서 심어 줄 것을 믿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사도적 활동에서 여러분은 장소, 환경, 시간에 상관없이, 상황에 가장 적합한 활동을 찾기 위해 우리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매우 넓은 범위에서 솔선수범해야 합니다.”50

이것이 나의 자녀, 수페르누메라리오들의 위대한 미션, 한계가 없는 바로 그 미션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내뿜는 수페르누메라리오가 없는 그런 마을은 단 한 곳도 없어야 합니다.”51

VIII. 성 십자가 사제회의의 오푸스데이에 관한 아그레가도와 수페르누메라리오의 소명

26. “여러분은 내가 오푸스데이에 한 부분인 만큼 똑같이 오푸스데이의 한 부분입니다.” 하고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성직자치단 사제단 (presbitery of the Prelature) 안으로 임명되지 않은 성십자가의 사제회의(Priestly Society of the Holy Cross)의 사제, 부제, 아그레가도, 수페르누메라리오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세상 한 가운데에서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은 교구에서 임명 받은 세상의 사제들도 포함합니다. 오푸스데이 안에서 소명은 동일합니다. 거룩함을 찾으려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각자의 환경에서 사도직을 행하고, 자신의 합당한 의무를 다하여 동일한 정신과 동일한 금욕적인 방법으로 오푸스데이 가족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성직자치단의 사람들과 성직자치단에 임명되지 않은 성십자가 사제회의 회원들에게 오푸스데이에 속하는 법규상의 방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그러나, 법적인 합의(관할권 또는 사제단 각각) 안에서 오푸스데이의 같은 정신과 오푸스데이의 특별한 방법으로 거룩함을 추구하라는 요구가 동일하다는 사실에서, 어떤 식이든 그 차이점으로 인하여 훼손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법규상의 차이는 당신이 당신의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고 오푸스데이으로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교구의 주교와 동료사제와의 관계에 있어서 아무런 변화 없이 당신이 속한 교구에 임명된 상태로 머뭅니다.

여러분의 소명은 믿는 이 들에게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들이 더 강해지도록 기여하게 됩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면서 여러분은 성직자의 헌신과 임무를 관대함으로 완수할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특별히 성직자의 소명을 촉진시키는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주교와의 일치와 교구 사제단 안에서 형제애적 누룩이라 불리게 됩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이것을 얼마나 격려해 주셨는지요! “서로 동행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인간적인 교류에 있어서 말입니다. 예수님과 성부, 성령을 따뜻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따뜻한 마음으로 형제 사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볼 때 그에게 가시오. 그가 당신에게 전화하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52

우리의 영적인 삶의 축인 오푸스데이의 성화가 성 십자가 사제회의 멤버들에게 근본적인 의미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성직활동을 성화시키면서 말입니다. 주요 측면에서 그것은 이미 객관적이고 성스러운 활동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일들과 같이 그것은 또한 개인적인 성화와 사도직에 대한 장소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27. 하느님께서 호세마리아 성인에게 오푸스데이를 보여주신 1928년 10월 2일의 백 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이후 세상과 교회안에서 그리고 따라서 오푸스데이에서도 많은 기쁨과 슬픔이 있었고 그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75년 3월 27일 강론하시면서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오푸스데이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회상하셨습니다. “거대한 파노라마: 너무나 많은 고통, 너무나 많은 괴로움, 너무나 많은 기쁨! 이제 모든 것이 기쁨입니다.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통이라는 진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조각가가 우리를 망치질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형체가 없는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53

오푸스데이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이 결정하신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대한 아름다움은 우리를 기쁨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그렇게 많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들을 보는 것은 건강한 인간이 갖는 기쁨입니다. 반면에, 매우 특별한 초자연적인 기쁨은 우리의 아버지께서 확신한바와 같이 “십자가 형태의 뿌리” 안에 있습니다. “성 십자가는 우리를 언제나 복음 그 자체인 영과 함께 견딜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도직 활동으로 기도와 희생의 단맛을 내는 열매를 생산하면서 말입니다.”54

성모님께 축복을 청하며, 어머니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오푸스데이가 우리 모두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은총에 부합한다면, 우리의 약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1928년 10월 2일에 시작된 이야기는 끝까지, 세상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모든 인간 활동의 맨 위에 세우면서 기쁨으로 계속 일할 것입니다.

모든 애정을 다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로마, 2020년, 10월 28일


참고문헌

[1] 1932년1월 9일 교서, 9항.

[2] 1952년 12월 12일 교서, 35항.

[3] 1954년 5월 31일 교서, 17항.

[4] 1967년 3월 19일 교서, 93항.

[5] 하느님의 친구들, 146항.

[6] 참조 Saint Thomas Aquinas,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Ch. 8, verse 3.

[7] 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모든 형제들, 277항.”

[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헌장, 3항.

[9] 사랑의 대장소 (The Forge), 69번

[10] 같은 곳에, 835번.

[11]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 (2013년 11월 24일) 121항.

[12] 호세마리아 몬시뇰과의 대화, 19.

[13] 1954년 5월 31일 교서, 34항.

[14]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 74.

[15] 사랑의 대장소 (Forge), 156번.

[16] 1951년 12월 24일 교서, 137항.

[17] 1961년 1월 25일 교서, 11항.

[18] 복사 알바로 델 포르티요, 성 미카엘 작업 훈령에 대한 해설, 135항

[19] 메시지 참고, 2020년 7월 20일

[20] 1957년 9월 29일 교서, 8항.

[21] 같은 곳에, 76항.

[22] 하비에르 에체바리아 주교, 사목 교서 (1995년 11월 28일), 16항.

[23] 성 가브리엘 작업의 훈령, 113항.

[24] 오푸스데이의 초자연적인 영성의 훈령, 28항.

[25] 묵상 메모, 4월 28일.

[26]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여성의 존엄”, 30항.

[27] 호세마리아 몬시뇰과의 대화, 88.

[28] 1965년 7월 29일 교서, 11항.

[29] 성 호세마리아, 모임 중 (1972년 09월 16일).

[30] 1957년 9월 29일 교서, 13항.

[31] 1956년 8월 8일 교서, 7항.

[32] 같은 곳에, 1항.

[33] 같은 곳에, 5항.

[34]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 163.

[35] 오푸스데이의 초자연적 영성의 훈령, 84항.

[36] 베네딕토 16세, 교황 연설, 2006년, 12월 22일.

[37] 길, 380번.

[38] 호세마리아 몬시뇰과의 대화, 92.

[39] 오푸스데이의 총 평의회에 보낸 편지, 년 12월 18일.

[40] 성 가브리엘 작업의 훈령, 9항.

[41] 1959년 1월 9일 교서, 7항.

[42] 같은 곳에, 10항.

[43] 같은 곳에, 53항.

[44] 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 30

[45] 1959년 1월 9일 교서, 53 항.

[46] 같은 곳에, 17항.

[47] 같은 곳에, 33항.

[48] 성 가브리엘 작업의 훈령, 23항.

[49] 같은 곳에, 15항.

[50] 1942년 10월 24일 교서, 46 항.

[51] 1959년 1 9일 교서, 13 항.

[52] 사제들과 가정 모임의 메모, 1972년 10월 26일,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보관소, 부문 P04 1972, II, 767.

[53] 호세마리아의 설교 메모,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의 보관소, 보문 P01 1975, 809.

[54] 오푸스데이의 초자연적인 영성의 훈령, 28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