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푸스데이 단장 몬시뇰의 2019년 11월 1일 사목교서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단장 페르난도 오카리스 몬시뇰은 우정에 대해서 사목교서를 쓰셨습니다. “우리가 키우고 튼튼히 해야 하는 첫 번째 친교인 하느님과의 우정 안에서 삶을 산다면, 당신은 진실한 친구를 많이 만들게 될 것입니다. (집회 6:17).

Opus Dei - 오푸스데이 단장 몬시뇰의 2019년 11월 1일 사목교서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예수님께서 나의 자녀들을 잘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1. 총회에서 얻은 결론이 담긴 저의 첫 번째 서간에서 저는 “복음화가 직면하고 있는 현재 상황은 그 어떤 무엇보다 사람들 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최우선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관계적인 측면은 사도직의 핵심이라는 것을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복음서 서술에서 찾으셨습니다.” 1

여러 나라 사람들과의 수 많은 만남에서 친교를 주제로 하는 자발적인 대화와 질문이 있었습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위대한 선에 대한 인간과 그리스도인의 중요성을 자주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께서 평생 유지했던 개인적인 친교를 어떻게 맺으셨는지 관련된 증언들은 넘치도록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일 안에서 주된 사도직은 우정과 신뢰라고 성인께서는 강력히 주장하셨습니다. 나는 이 주제로 우리 아버지 성인의 가르침에 관한 몇 가지 관점을 여러분들께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우정

2. 완벽한 인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인간적인 우정의 가치로 삶을 사셨습니다.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주위 사람들과 친교를 맺으셨습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는 길에, 12살 이던 예수님은 이미 친구들과 친척들과 함께 여행 중 이었습니다. (루카 2: 44) 이후, 공적인 삶을 사는 동안 그 분께서는 친구나 지인들의 집을 방문하거나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집(루카 3: 48), 레위 (루카 5:29), 시몬 (루카 7:36), 야이로 (루카 8:41), 자캐오 (루카 19:5)의 집 등 말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 (요한 2:1)와 다른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던 장소에도 가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적으로 전념하셨습니다. (마르 3:7)

예수님께서는 친교를 시작하실 때 그 어떤 상황을 활용하셨는데, 특별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종종 멈추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그녀가 이해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감지하기에 단 몇 분간의 대화는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질문 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가? (요한 4:29). 엠마우스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나란히 걷고, 함께 식탁에 앉은 뒤에,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을 타오르게 한 친구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루카 24:32)

우리 주님께서는 종종 더 긴 시간을 친구들에게 전념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우리는 베타니아의 한 가정에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긴 시간 동안 가족들과 친밀하게 보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애정과 격려의 말씀을 나누시고 그들의 우정에 자신의 우정으로 보답하십니다. 베타니아의 라자로와 마르타, 마리아의 가정에서 얼마나 놀라운 대화들이 오고 갔는지요! (요한 11:21) 공감으로 가득 찬, 특별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말입니다. (요한 11:3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자신의 우정을 베풀고자 하는 가장 깊은 열망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세나클(Cenacle)의 친밀함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르겠다 (요한 15:15). 그리고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물이 아닌 진정한 우정을 베푸신 그리스도안에서 자녀로서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그분의 뜻에 일치 시키면서 그분의 우정에 응답합니다. (요한 15:14).

Idem velle atque idem nolle - 같은 것을 원하고 같은 것을 거부하는 것 - 은 고대부터 진정한 사랑의 정수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고 이것은 곧 공동체의 뜻과 생각이 됩니다.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뜻의 일치는 생각과 정서의 일치 안에서 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뜻과 하느님 뜻은 점점 더 일치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나에게 더 이상 외계인의 뜻, 즉 계명이 없는 곳에서 나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지금 나의 의지인데, 하느님께서 사실 나 자신보다 내게 더 깊이 현존하고 계신다는 깨달음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커지고 하느님은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시편Ps 73{72}:23-38).”3

3. 예수님께서는 신의가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과 함께 진정한 친교를 깨닫는다면 자신감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친교는 깨질 수 없습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듯한 시간에도 그분께서는 결코 우리를 떠난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을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 주십니다 (예레 29:14);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여호 1:9). 그분께서는 결코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당신을 버리지 말라고 단순히 말씀하십니다(요한 15:4). 우리가 그분을 벗어날 지라도, 그분께서는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을 부정하실 수 없으십니다 (2 티모 2:13).”4

예수님의 우정에 응답하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란 곧 신앙인으로서 삶의 정신이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 사랑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입니다. “우리에게는 풍요로운 내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하느님과의 친교이고 어떠한 영적 일에서든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조건입니다.”5 영적으로 행하는 훌륭한 모든 일, 사도직은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즉, 진정한 신앙인의 원천인 하느님과의 친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키우고 튼튼히 해야 하는 첫 번째 친교인 하느님과의 우정 안에서 삶을 산다면, 당신은 진실한 친구를 많이 만들게 될 것입니다. (집회 6:17). 우리 주님의 노력과 그분의 친교 안에 우리를 지속적으로 머물게 하시려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어 많은 영혼들을 얻고자 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6

우정의 인간적 가치와 교회적 가치

4. 우정은 인간에게 주어진 매우 풍요로운 현실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의 사랑은 상호간의 지식과 의사소통으로 이루어집니다. 7 그 사랑은 “쌍 방향으로 향하는 사랑의 형태이며 다른 사람의 진실한 선을 찾는 것이고 일치와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8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충실한 친구만큼 소중한 것은 없고 어떠한 등급으로도 그분의 능력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집회 6:15)

관대함은 인간의 초자연적인 수준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줍니다. 우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정화되고 변화되는 우정은 가장 고귀하고 가장 높은 인간 정서중의 하나입니다.”9 이 정서는 종종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시간을 내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정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정은 잠깐 또는 일시적인 관계가 아닌, 안정되고, 견고하며, 충실한 관계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숙해지는 관계입니다. 그것은 애정 어린 관계 즉, 친구의 이익을 찾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서 우리가 하나되고 너그러운 사랑을 느끼게 하는 그러한 관계입니다.”10

5. 하느님께서는 종종 본인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진실한 우정을 활용하십니다. 구약은 아직 젊은 다윗과 이스라엘의 왕위 계승권자인 요나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사무 18:4). 요나탄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의 친구와 공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1사무 18:4). 그리고 어려운 순간에도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이 한 모든 선행을 상기시켰습니다(1사무 19:4). 요나탄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였기 때문에 (1사무 20:17), 그는 심지어 친구를 옹호함으로써 왕위계승의 위험을 무릅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진실한 우정은 두 사람 모두를 하느님께 충실하도록 이끌었습니다 (1사무 20:8,42).

초기 신앙인들은 특별히 이러한 점에서 가히 웅변적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그들은 부드러우면서 강력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였습니다”11 라고 상기시키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우리는 성 바실리오와 나지안의 성 그레고리오 시대였던 1 세기 또 하나의 다른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젊은 시절부터 맺은 우정은 일생을 통하여 유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 두 분의 축일을 전례력 상 같은 날 지냅니다. 그레고리ㅇ 성인께서는 “우리의 단 하나의 목표와 야망은 미덕이고 다가올 축복 속에 있는 희망의 삶이었습니다.”12 그들의 우정은 하느님과 거리를 두기보단 오히려 그들을 그분께 가까이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법의 지침을 따랐고 서로 미덕을 쌓게 했습니다.”13

6. “신앙인으로써, 하느님의 자녀 안에서 우정과 자선은 하나이고 동일한 것입니다. 그것은 따뜻함을 퍼뜨리는 하느님의 빛입니다.”14 심지어,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우리 주님께 하신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실한 우정은 자선을 통하여 일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한다”15고 말 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선은 다소 강렬할 수 있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우정은 다소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위대한 우정 또는 “위대한 우정을 갖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비록 이것이 그렇게 위대하거나 친밀하지 않은 그러한 진실한 우정의 존재를 배제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새 천 년이 시작되었을 때,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미래에 생겨날 사도직의 이니셔티브는 “영혼 없는” 기계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진실된 사랑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면, 성실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들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 “그들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고, 그들의 욕망을 억누르고 그들의 필요에 따르고, 그들에게 진정한 우정을 제공하지.”16 않는다면 말입니다.

훌륭한 교리수업을 완수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는 우리 센터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고 진실한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우는 그러한 장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7. 그리스도인에게 친교란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친교는 큰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 나쁜 것처럼 비판했습니다 (마태 11:19). 우리는 자신의 작음 안에서 주님을 닮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어느 누구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어떤 영혼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당신의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적인 우정- 그러한 확고하고 충실한, 진실한 우정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러분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상황이 어떻든 간에 모든 사람들과 이 우정을 실천해야 합니다.”17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와 시간이란 사회적 환경에 완전히 몰입하시는 그러한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을 나누실 때 하나의 작은, 제한적인 그룹으로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람들 즉, 거룩한 여성들, 많은 군중들, 니코데모와 같은 상류층, 자캐오와 같은 공인, 경건하게 간주되는 사람들,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죄인들, 건강한 또는 병든 사람들, 부드러운 사랑으로 감싸주신 가난한 사람들, 율법학자들,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보다 더 높이 평가했던 믿음을 가진 이교도들, 나이든 사람들, 어린이들 등, 모든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 받는, 위로 받는, 깨우치는 말씀을 누구에게나 다 하십니다. 얼마나 자주 내가 이 묵상을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 인간이시고 동시에 하느님이신 -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행하신 예수님의 사도직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중재하려고 노력했는지!”18

우정의 표현

8. 친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너그러움이란 표현에 특별한 가치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그들과 함께 공유 또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기회가 결코 오지 않을지라도, 진실한 우정은 친구들의 인생관을 이해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19 그래서 친구란 우리 자신의 것과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방법에 이해와 도움을 주고, 우리의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합니다. 그리고 우정이 깊은 친구는 우리에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결국 그들의 생활과 경험 속에서 실천하는 나눔 즉, 다른 사람의 정서 안에서 실천하는 진정한 나눔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예컨대, 그들의 문제, 개인적인 삶의 과정,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그리고 예수님께 다가가가려고 스스로 시간을 갖는 것 등을 바라보면서 수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우정을 쌓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애정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편견으로 다른 이를 바라보는 습관을 버리고, 각자 개인의 선한 면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고, “우리 자신의 이미지”로 재생산하려는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친구들이 우리의 애정을 받기 위하여 어떠한 조건을 충족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 라고 생각합니다. 친교의 관계가 제 각각이듯 각자 개인은 특별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들에게 동일한 약을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같은 사랑이 어떤 사람에게는 빛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을 나누어 줍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온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며; 그것은 누구의 적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어머니입니다.”20 친구라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영혼을 창조할 때,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반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그리고 그들을 이끄신 것처럼 각 개인을 있는 그대로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21 우정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을 위하여, 고통 받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순간에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영혼 안에서 그 사람 고유의 방식과 시간에 맞게 행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9. 우정은 그 무엇보다 계산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가족 멤버간에는 조화로움을 그리고 사회 환경 안에서는 인간의 인격에 더 걸 맞는 사회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소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당신과 동등한 남녀 동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 노력과 꿈, 희망과 모험 등을 서로 나누면서 세상의 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이 땅에서 수 없이 많은 길을 걸어가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이 그렇게 하도록 가령,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고, 평화와 우정의 환경을 조성하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22

우리들 각 개인이 지녀야 할 우정의 환경이라고 말하는 이것은 타인에게 즐거운 삶을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의 열매입니다. 친절, 즐거움, 인내, 긍정, 세련됨 안에서 성장하는 것, 그리고 모든 미덕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환대 받고 있음을 느끼고 행복해지도록 하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유쾌한 목소리는 더 많은 친구를 얻고, 친절한 혀는 정중함을 증가시킵니다 (집회 6:5). 우리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은 친교를 촉진시키는데 필요한 조건입니다.

자신의 끊임없는 표현이나 특별한 방법으로 우정이라는 환경조성을 불안하게 하거나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단호한 자신의 의사표현, 자신의 견해가 결정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들은 한 사람을 자기자신 안으로 가두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러한 유형의 행동은 의견의 문제인지 아닌지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또는 오직 하나의 해결책만 있는 것이 아닌 그 어떤 주제에 상대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10. 우리 신앙인들은 정확히 그리스도의 일치와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신 사명과 함께하는 우리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군중에게 봉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대중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안에 깊이 담겨 있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이나 내 곁에 머물러 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마르 8:2).”23

친구들과 유대관계를 강화하려면 시간과 관심이 필요하고 종종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을 피하거나 우리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제쳐 놓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첫째는 기도이고 거기에서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이 세상이 -오직 우리의 유일한 가치인- 그리스도 교회의 길을 따라 움직이려면 우리는 이전에 하느님과 맺은 충실한 우정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과 충실한 우정의 관계를 발휘해야 합니다.”24

성실과 우정

11. “진실한 친구는 자신의 친구에게 결코 두 얼굴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Vir duplex animo in constans est in omnibus viis suis (야고 1:8), 이중 인격자는 모든 면에서 불안정 합니다. 만약 친구에게 충실하고 진실 하려면, 우정은 희생과 온전함, 고귀한 친절과 서비스의 주고받음을 요구합니다. 초자연적인 신중함으로,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친구는 다른 사람들을 관대하게 생각하는데 강하고 성실합니다.”25 우정은 서로 통합니다: 우정은 충실하고 친구들은 각자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도록 양쪽방향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마치 잃은 양을 다신 찾은 목자와 같이 (루카 15:6), 또는 잃었던 은전을 찾은 여인과 같이 (루카 15:9) 친구는 자신들의 기쁨을 공유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희망과 계획, 자신의 근심까지도 공유합니다. 마치 백인대장이 자신의 종의 치유를 부탁하러 예수님께 다가왔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루카 7:6), 우정이란 특별히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고귀한 우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우정에 대한 사랑의 위대함을 모방 하려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12. 때때로 어떤 유보적인 성격 또는 수줍음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애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합니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두려움을 떨쳐버린다면, 하느님께서 친구들에게 사랑을 쏟아내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우정은 상호간의 애정을 수반하고 상호간의 자유와 친밀함을 진심으로 보호하는 것입니다.”26 토마스 성인께서는 이와 유사한 말씀을 하십니다. 진정한 우정은 겉으로 보여져야 합니다: “우정은 친구와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사랑은 어떤 상호성을 필요로 합니다.”27

동시에, 우정 때문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경우, 위험을 감내하는 의지가 수반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경험하셨습니다. 부유한 젊은이가 다른 길을 택하려는 것을 더 선호했을 때 (마르 10:22) 또는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서 내려 오실 때, 예루살렘 사람들의 굳어진 마음을 생각하고 우시면서 말입니다 (루카 19:41). 조만 간에 일어날수도 있는 그와 같은 경험을 한 후,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서 감내하셨듯이, 우리도 그러한 위험을 감내하면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약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한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첫 걸음을 유지하면서, 생겨날지도 모르는 위대한 선을 주시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진실한 우정입니다.

13. 열매 맺는 우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정과 사회생활 안에서 개인의 자발성을 키우고 각 개인의 진취성을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특성 즉, 자발성과 진취성은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자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양육되어야 하고, 그 자체, 있는 그대로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사랑 받고 육성되어야 할 다원주의가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비록 누군가는 이러한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의 긍정적인 생각과 매력적인 면을 볼 수 있습니다.”28 서로 다르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태도는 내면의 자유와 개방성을 뜻하며, 이 두 가지 특성은 진실한 우정의 측면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사랑(하나의 표현)과 같은 우정은 현실에서 하나의 뜻만을 지니지 않습니다. 한 친구의 모든 것, 자신만의 친밀함을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강하게 권장하신 우정으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우정, 부모와 자녀간의 우정 그리고 형제간, 동료간의 우정, 이러한 우정은 다 같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 안에는 특별한 관계로 맺은, 특별히 공유된 내부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친밀함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성실성의 결여나 우정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반대: 일반적으로 그것은 우정의 본질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우정과 형제애

14. 알바로 델 포르티요 복자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과 그분의 친구가 되는 것, 이 두 가지 것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2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형제애와 우정 사이에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같은 부모의 자녀로써 단순한 관계로 시작하는 형제애는 형제들간의 사랑과 애정을 통하여 예컨대, 관심거리를 공유하고, 서로 소통하면서 이해하고, 세심하고 통찰력 있는 봉사, 물질적인 도움 등, 이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우정이 쌓이게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하느님 사업(Work)이란 소명 때문에 공유하는 형제애 또한 우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바라는 선이 그들의 행복, 충실함, 그리고 그들의 거룩함으로 변화될 때, 비로써 성숙한 우정을 성취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 우정은 배타적이거나 다른 사람을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시간과 공간이란 한계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동일하게 강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관계를 맺을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하느님의 사업 (the Work of God)의 특징인, 매우 아름다운 관대함으로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고, 우리 자신의 거룩함과 다른 사람들의 거룩함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카드놀이의 힘(strength of playing-cards)으로는 혼자서 일어날 수 없지만, 서로를 지지하면서 성까지 쌓을 수 있는 강력함을 느끼게 됩니다.”30 그래서 우리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사랑은 하느님 사업 전체를 하나로 유지하는 것과 같은 사랑입니다.

15. 우정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사명을 위한 지속적인 지지와 자극입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우리의 기쁨과 계획, 우리의 걱정과 희망을 공유합니다. 비록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느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적어도 영적인 방향에서 혼자서 지키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와 동일한 것이 부부간의 우정, 부모와 자식간의 우정, 그리고 일반적으로 좋은 친구들간의 우정에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운 삶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즐거운 헌신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상식과 초자연적인 감각으로 행동하는 한, 극단적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거룩함에 이르는 길의 한 부분입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하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애정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사업(Work) 안에서도 애정이 필요합니다. 넋두리 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당신의 애정이 계속 커질 수 있도록 확실히 하십시오. 나의 자녀들 중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어야 합니다.”31 우리의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그분의 애정입니다. 그분은 자녀들이 최상의 것을 얻게 노력하도록 그들 각 개인을 이끄셨고, 동시에 자신에게는 그들의 자유를 깊이 사랑을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16. 너그러운 형제애는 한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도록 이끌고 항상 그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더 나아지고 더 거룩해지길 원하도록 우리를 밀고 나아가게 합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항상 하느님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큰 마음을 가지시오. 저는 종종 하느님에게 당신의 마음을 주시라고 청합니다. 더욱 그분으로 가득 차도록 우선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선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모두를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 대해 얼마나 참으셨는지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저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애정은 형제애적인 충고에서도 보여주는데, 필요할 때마다, 그것은 우리 주위 사람들을 돕는 초자연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32 형제애적인 충고는 애정의 산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항상 더 행복하기를 우리가 원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끔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매우 만족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17. 우리의 개인적인 행복은 스스로 성취한 성공에 달려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받은 사랑과 베푼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의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안전을 제공합니다: in hoc pulcherrimo caritas bello ! 우리는 모두에게 예컨대, 언어, 국가, 생활방식에 근거한 어떠한 예외도 없이, 그리스도의 자비를 가져다 주려고 노력합니다.”33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께서 다음 구절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frater qui adiuvatur a fratre quasi civitas firma: 형제의 도움을 받는 형제는 성벽이 있는 도시와 같습니다. (잠원 18:19)

마지막 회합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던 돈 하비에르(don Javier) 단장님께서는 자주 반복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것은 언제나처럼 우리 아버지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외침이었습니다. 사도 성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새로운 계명을 얼마나 고집스럽게 설파 했었는지요! 어떠한 행동 없이, 저는 무릎을 꿇곤 했습니다. 내 마음이 요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손을 내밀고, 서로 용서하는 법을 알게 해주시라고 말입니다. 모든 자긍심을 버리고, 동정심과 함께, 자선을 베풀면서, 기도하고 진실한 우정을 나누면서 서로 도우십시오.”34

우정의 사도직과 신뢰

18.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고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오푸스데이 초창기부터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당신은 사도직의 지평을 여는, 당신의 시의 적절한 언어로 영혼들을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가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 누군가를 당신의 현명한 조언으로 그리스도적인 접근을 하게 합니다: 어떻게 자선을 베푸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당신의 친절한 대화를 통해서, 제가 가끔 우정과 신뢰의 사도직이라 불렀던 그 사도직을 통해서 말입니다.”35

인간적인 차원의 우정을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키우는 자선과 같은 진정한 우정은 그 자체에 가치가 있습니다. 우정은 비록 사회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단점을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사회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많은 사람들과 우정을 쌓으라고 권하면서 동시에 경고하셨습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당신들은 사실 우정을 사회적 침투의 전략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우정이 그 본질적인 가치를 잃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첫째이며 즉각적인 요구조건 즉, 인류애적인 요구조건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정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서로 아무리 다르다 할 지라도 그것은 상관 없습니다.”36

우정은 상대방을 향한 진심 어린 우려를 보여주기 때문에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정은 그 자체가 사도직이고, 빛을 주고받는 대화 그 자체입니다. 우정 안에서의 계획은 우리가 상호간에 지평을 열어갈 때 구축됩니다. 우정 안에서 우리는 좋은 것은 서로 기뻐하고 어려운 것은 지지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37

충실하고 진실한 우정이라면 이용당할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각자 친구들은 자신들의 삶 안에서 경험한 좋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를 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 우리의 기쁨과 봉사하는 마음을 수 천 가지 작은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증거하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에 관한 말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삶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그분의 말씀을 중재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습니까?”38 그러한 우정은 결국, 자연스럽게, 우정의 진정한 특성에 필요한 결과로서, 자유를 민감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 개인적인 신뢰를 쌓게 될 것입니다.

19. 친교는 자연스럽게 많은 나눔의 순간들로 이끌어 갑니다: 함께 걸으면서 또는 식탁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하면서, 운동 하면서, 같은 취미를 즐기면서, 야외에 나가면서 등입니다. 요컨대, 친구관계는 상호간의 반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신뢰 없이는 친교도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친교의 사도직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개인적인 친교, 자기희생과 성실, 서로 마주 대하면서, 마음과 마음으로 등을 뜻합니다.”39 진실한 우정이라면,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진정 어린 염려와 기도로 채워진다면, 사도직이 아닌 나눔의 순간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즉, 모든 것이 우정이고 모든 것이 사도직 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친교만이 아닌 신적인 친교의 엄청난 중요성. 내가 하느님 사업(Work)을 시작할 때부터 해왔던 것과 같이, 여러분 들에게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당신의 친구에게 친구, 진실한 친구가 되어 주시오. 그리고 나서 열매를 맺는 사도직을 수행하고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40 그것은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친구를 사귀는 문제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우정을 충만하게 하여 우리가 진정한 사도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20. 우정의 탄생은 뜻밖의 선물로 다가 오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때때로 어떤 나쁜 경험이나 편견 때문에 가까이 있는 몇몇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우정으로 변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 인간 존중 또는 특별한 선입견 역시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자신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인내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빌라도처럼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모든 사람과 대화할 준비가 된”41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합니다.

복음화에는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 사업 안에서, 주된 사도직은 항상 친교이고 그것은 우리의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이여 오푸스데이 업적의 가장 큰 결실은 그 구성원들이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모범적인 사도직과 충실한 우정을 통하여 개인적인 친구를 얻는 것입니다. 그 일터란 대학이나 공장, 사무실, 광산, 농장 등 모든 곳이 될 수 있습니다.”42 자신의 당면한 과제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친구를 돌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21. 게다가, 그들과의 친교는 종종 센터에서 행해지는 공동 사도직과 자주적인 사도직으로 보완될 것입니다. “당신들 중 한 명과의 우정은 처음에는 애정과 이해로, 그리고 그 사람이 정기적으로 오푸스데이 센터에 참석함으로써 그들은 곧 거기에서 자신들의 집처럼, 자신들의 무엇인가로 여기는 것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만나는 우리들의 집에서 알게 되는 사람들과 이후에 우정으로 일치를 이룰 것입니다.”43

22. 친교의 사도직 안에는 우리의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의 사도직에 포함됩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믿음을 가지시오, 건실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 사랑을 통하여 행하는 믿음 말입니다, veritatem facientes in caritate (에페 4:15) 이 정신을 갈라진 형제들과 비 그리스도인에게도 유지하십시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고, 모든 사람에게 우정을 베푸십시오. 누구든 우리의 공동 사도직에 다가오는 사람들 중, 그 또는 그녀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푸대접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믿음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44

23. 여기에서 저는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선물인 친교가 어떻게 필요한지 여러분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우리 마음의 감정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게,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우리에게 만약 행복할 수 있는 어떤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노래하고 웃고,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행복을 나누고자 하는 내면의 힘을 느낍니다. 만약 우리 영혼을 채우는 것이 슬픔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용한 분위기를 우리는 주위에 갖고 싶어합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인간으로써 우리는 삶의 길을 따라 여행하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동의 결실을 누리기 위해서 서로 지지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친교의 중요성은 인간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두 가지 다를 의미합니다.”45

1930년대에 하느님 사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최초의 젊은이들은 우리 아버지의 주변에서 진정한 우정이라는 분위기를 발견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매력적이었고, 어려운 시간 동안에도 그들을 하나로 일치시켜 주었습니다. 우정은 우리의 기쁨을 증가시키고 우리가 슬플 때 위안을 줍니다. 그 또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그리스도인의 우정인 -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는 가장 커다란 행복을 갈망합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기도합시다 “당신의 것과 같은 마음을 저희에게 주십시오.”46 바로 그것입니다. 오직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과 동일시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필리 2:5)- 우리는 우정을 통하여 우리의 집, 일터, 우리가 있는 모든 장소에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모든 애정을 담아 당신을 축복합니다,

페르난도


  1. Pastoral Letter, 14 Feburary 2017, no. 9.
  2. Saint Josemaria, Letter, 24 October 1965, no. 10.
  3. Benedict XVI, Enc. Deus caritas est, 25 December 2005, no. 17.
  4. Francis, Apost. Exhort. Christus vivit, 25 March 2019, no. 154.
  5. Saint Josemaria, Letter, 31 May 1943, no. 8.
  6. Saint Josemaria, Letter, 11 March 1940, no. 70.
  7. Cf. Saint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I-II, q. 23, a. 1, c.
  8. Saint John Paul II, Address, 18 Feburary 1981.
  9. Bennedict XVI, Address, 15 September 2010.
  10. Francis, Apost. Exhort. Christus vivit, 25 March 2019, no. 152
  11. Saint Josemaria, Friends of God, no. 225.
  12. Saint Gregory Nazianzus, Sermon 43.
  13. Ibid.
  14. Saint Josemaria, The Forge, no. 565.
  15. Saint Augustine, Confessions, 4, 7.
  16. Saint John Paul II, Apost. Letter Novo millennio ineunte, 6 January 2001, no. 43.
  17. Saint Josemaria, Letter, 9 January 1951, no. 30.
  18. Saint Josemaria, Letter, 24 October 1965, no. 10
  19. Saint Josemaria, Furrow, no. 746, cf. the Way, no. 463
  20. Saint Augustine, The Catheehesis of Beginners, 15, 23
  21. Saint Josemaria, Letter, 8 August 1956, no. 38.
  22. Saint Josemaria, Letter, 24 October 1965, no. 2.
  23. Saint Josemaria, Letter, 31 May 1954, no. 23
  24. Saint Josemaria, The Forge, no. 943.
  25. Saint Josemaria, Letter, 11 March 1940, 71.
  26. Pastoral Letter, 9 January 2018, 14.
  27. Saint Thomas, Summa theologiae, II-II, q.23, a. 1, c.
  28. Pastoral Letter, 9 January 2018, 13.
  29. Blessed Alvaro, Foreword, in Friends of God.
  30. Saint Josemaria, Letter, 29 September 1957, 76.
  31. Saint Josemaria, quoted by Blessed Alvaro in Family Letters (1), 115.
  32. Saint Josemaria, Notes taken in a family gathering, October 1972.
  33. Saint Josemaria, Notes taken in a mediation, 29 February 1964.
  34. Saint Josemaria, The Forge, 454.
  35. Saint Josemaria, Letter, 24 March 1930, 11.
  36. Saint Josemaria, Letter, 11 March 1940, 54.
  37. Pastoral Letter, 9 January 2018, 14.
  38. Pope Francis, Apost. Exhort. Christus vivit, 176
  39. Saint Josemaria, Furrow, 191.
  40. Saint Josemaria, Letter, 24 October 1965, 16.
  41. Ibid., 12
  42. Saint Josemaria, Letter, 11 March 1940, 55.
  43. Saint Josemaria, Letter, 24 October 1942, 18.
  44. Saint Josemaria, Letter, 24 October 1965, 62.
  45. Ibid., 16.
  46. Cf. Saint Josemaria, Furrow, 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