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푸스데이 단장 몬시뇰과 함께하는 성주간 묵상 (2)

성주간을 맞이하여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단장 페르난도 오카리츠 몬시뇰께서 4월 사목 교서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성주간의 의미를 같이 묵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Opus Dei - 오푸스데이 단장 몬시뇰과 함께하는 성주간 묵상 (2)

오푸스데이 단장 몬시뇰과 함께하는 성주간-묵상_두번째


두번째 묵상, 새 계명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그리고 이 계명이 제자들과 우리 각자의 기억에 확실히 새겨지도록,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성 요한 사도께서는 요한 1서에서 이렇게 전해주셨습니다.“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요한1 3,16).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데에는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끊임없이 돌보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줍니다. 근로자들은 섬김의 정신으로 일을 하면서,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주위 환경을 개선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줍니다. 사제들은 예수님을 찾아오는 모든 형제, 자매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그들을 섬기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환자들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고 있는 의료인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이웃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의료인들은 환자들과 특히, 환자들 곁에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가족들의 고통의 짐을 대신 짊어주고 있습니다. 의료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자신들의 관대함에 달려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비록 눈에 띄지 않지만, 필수 업종에 종사하며 협력하고 있는 유통업자, 마트 계산원, 약사, 경찰관도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 모든 종류의 의료 종사자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사제들을 통해 우리는 병으로 인한 두려움과 고독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양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지쳤을 때, 너무 많은 업무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서 격려하시고 힘을 북돋아 주신다는 것을 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웃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요즘같이 평소보다 더 혼자 시간을 보내는 상황에는 가끔씩 아픈 이들이나 친구들 혹은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간단한 방법으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지침들을 지키면서, 우리는 우리의 결단력과 창의력을 활용하여 노인들과 취약계층의 이웃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집에서 가족들과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전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을 행하며 주님의 새 계명을 매일 실천할 수 있습니다.

호세마리아 성인께서는 "애덕은 ‘주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길, 463)

이 계명을 일상 생활에서 온전히 지키는 방법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용서하고 작은 실수들을 넘어가 주기,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기, 일상생활 속에서 작게 나마 다른 이들을 도와주기, 특히, 현재 같은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행동에는 ‘가정생활에서 인내심을 갖고 생활하기, 자가격리 상태에서도 침착하게 살아가기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을 섬기는 것이며,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일에 보다 완전한 의미를 가지게 되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비록 희생이 요구될지라도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자신의 제자가 될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며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요한 17,21).

“ut omnes unum sint”-그들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일치는 잘 조직된 인간적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하느님의 사랑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일치를 말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일치의 완벽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아래와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 4,32)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치는 사랑의 결과로 획일성이 아니라 친교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치는 다양성 안의 일치로, 우리 모두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기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다양성을 통해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배우고, 우리 주변에 무심한 곳에 사랑의 분위기를 퍼뜨리며, 이웃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세상이 믿도록 하여라.”고 말씀하시며, 이 일치가 우리의 사도직에서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한 조건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일치는 폐쇄적인 집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라는 훌륭한 사명을 다하면서 우리의 우정이 모든 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성소를 충실히 따른다면, 예수님과 가깝던 가깝지 않던 간에 우리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예수님께 더 가까이 데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요한 17,21). 저희 주님, 저희에게 일치의 은사를 내려 주소서.
저희가 서로를 섬기면서 일치를 이루게 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