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주교의 9월 사목서간

9월 단장주교의 사목서간이다.

나의 영적 자녀들이여,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나는 지금 독일에서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이전에 나는 남미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의 많은 형제 자매들, 그리고 오푸스데이의 정신을 공유하는 많은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세계청년대회 동안, 베네딕토 16세께서 말씀하셨듯이, 교회는 젊고 아름다우며 항상 그러하리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그 기간 동안 여러분이 나와 영적으로 함께 해 준 것처럼, 사도직의 열매가 더욱 풍성해 지도록 지금도 계속해서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우리는 교회를 구별지어 주며 우리가 신경에서 고백하는 교회의 지표들에 관해 살펴보면서 교회의 아름다움을 고찰하였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양 떼가 되어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선한 목자는 계속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십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욱 가깝게 일치시키고 그분 신비체의 활동적인 일부, 성령이 깃드는 성전의 살아있는 돌로 만들어 주는 성체성사를 비롯한 여러 성사들을 통하여 은총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또 고해성사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적인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새롭게 주십니다.

8일의 성모탄신 축일이 가까워 옴에 따라 이러한 현실을 묵상하는 것은 나에게 기쁨을 줍니다. 마리아 안에서 우리 모두가 부름 받은 이상이 충만히 실현됨을 봅니다. 티없으신 잉태로부터 우리 성모님은, 모든 죄로부터 보호되고 은총으로 충만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딸, 성령의 살아있는 성전으로서 육화된 말씀의 어머니가 되도록 정해지셨습니다. 자녀다운 사랑으로 이 축일을 준비합시다. 성모님을 축하하며 성모님의 착한 자녀로서 성모님의 아들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흔들림 없는 충실함을 선물로 드립시다. 이 달에 있을 다른 마리아 축일 동안, 그리고 항상, 성모님과 가까이 머무르도록 합시다.

나는 또한 이 달 한가운데에 지내게 될 축일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고자 합니다. 14일 십자가 현양 축일, 그 다음날인 십자가 곁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이 날은 또한 우리 사랑하는 돈 알바로가 오푸스데이의 수장으로서 아버지 성인의 첫 후계자로 선출된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이 날들은 교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그 구원 역량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터진 옆구리로부터 인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새로운 아담’ 그리스도께 협력한 ‘새로운 이브’ 성모님의 공동 노력으로 얻습니다. 이리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한 회기를 마무리 하면서 교황 바오로 6세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하였습니다. “즉, 하느님 백성의 어머니, 그분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라고 부르는 목자들과 신도들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렇게 불리고 기림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 아버지 성인께서 성모님을 이와 같은 칭호로 부르게 된 것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묘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그 전부터 이미 개인 기도에서 그 칭호를 사용하고 있었 습니다.

마리아 안에서 교회의 모든 본질적 속성들이 가장 흐드러지게 빛납니다. 하느님 그리고 인류와의 긴밀한 일치, 뛰어난 거룩함, 모든 이의 필요에 열려있는 마음의 보편성, 그리고 사도적 성격. 근 몇 주 동안 여러분에게 이러한 지표들을 상기시키는 것은 나의 기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교회가 “든든한 기초, 곧 ’어린양의 열두 사도’(묵시 21:14) 위에 세워졌으며, 무너질 수 없고 (마태 16:18 참조), 진리 안에 확고하게 서 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주교단 안에 현존하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신다” [2] 는 것을 고백합니다.

교회의 이러한 측면은 성모님 안에서 밝게 빛납니다. 갈릴래아의 가나에서 ‘스승’의 첫 제자들이 그에게 믿음을 가지게 하여 훗날 그들이 받게 될 부르심에 준비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마리아였기 때문입니다. [3] 또한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를 부르시어 그녀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맡기셨고 그 안에서 모든 제자들을 맡기셨습니다. [4]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 임무에 충실하시어 오순절을 기다리는 동안 사도들을 하나로 모으셨습니다. [5] 초대 교회가 우리에게 증언하듯이, 성령 강림 후에 성모님께서 얼마나 밀접하게 그들이 내딛는 첫 복음화의 발걸음을 따라가셨는지는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성모님은 거룩한 사도들과 다른 신도들이 그들이 겪는 모든 고통 속에서도 참을성 있고 강해지도록 격려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피곤함을 함께 나누시고 그들의 전도를 성원하셨으며 감금되어 핍박과 역경 속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과 영적인 일치 안에 계셨습니다.” [6] 이제 천국에서 보다 큰 힘으로, 성모님은 교회의 사도직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가기를 촉구하십니다. 성모님은 목자들과 신도들에게 힘을 주시어 각자가 받은 재능과 은총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성 바로오처럼 ‘이방인들과 임금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7] 각자의 인간적 신적 소명이 그들을 있게 한 환경에서 알리도록 하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가르칩니다. “전체 교회가 사도적인 이유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신앙과 생활에서 그 기원과 하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체 교회는 온 세상에 ‘파견’되었으며,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파견에 참여함으로써 사도적이다.” [8]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승천에 앞서 열두 제자가 받은 사명은 성직자들에게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분들이 있습니다만 목표는 오직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성화. 세례와 견진 성사에 의해 새겨진 인호를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과업에 참여합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의 사명, 즉 그리스도의 사명에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열정이 없는 자, 그리스도의 이름과 가르침이 알려지고 사랑받게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는 자는 교회의 사도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9]

보편교회의 목자로서 첫 몇 달 간,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지치지 않고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 기쁜 사명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교황께서는 우리가 자문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진정 살아있는 돌입니까 아니면 그저 지치고 따분해 하거나 무관심한 돌멩이입니까? 지치고 따분해 하며 무관심한 그리스도인을 보는 것이 얼마나 암담한 지 알아차린 적이 있습니까? 그런 그리스도인은 전부 잘못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임을 즐거워하며 생기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에 속해 있다는 아름다움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작용에 우리 자신을 열어 놓습니까. . . 아니면 자기 자신 안으로 쪼그라들어 ‘난 할 일이 많아, 이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말합니까?” [10] 그리고 최근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세계청년대회를 마무리 하면서 교황께서는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어조로 같은 요청을 하셨습니다. 그 메시지는 세 마디로 요약됩니다. “가서, 두려워하지 말고, 봉사하십시오.” 계속해서 말씀하시길 “하지만 주의하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러고 싶고 시간이 있다면 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경험을 공유하고, 신앙을 증거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여러분을 포함한 전체 교회에 내리신 명령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배욕, 권력욕에서 나온 명령이 아니라 사랑의 힘,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 가운데 오시어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셨다는 사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셨다는 사실로부터 나오는 명령입니다.” [11]

미지근한 그리스도인, 수동적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구원에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사도직은 교계와 사제, 수도자들을 위해 유보된 사명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모범과 말씀의 전파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향해 솟아나는 은총의 도구가 되라고 하십니다.” [12] 이는 오푸스데이 창설 직후 교회 안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의 사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성 호세마리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모두에게 유효하지만, 특히 평범한 가톨릭 신자들,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지상의 현실 한 가운데에 살면서 그것을 하느님 나라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여성과 남성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즈음에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명심하게. 자네는 단지 선한 일을 하려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한 것이 아니네. 이것도 대단한 것이지마는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네. 자네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사도일세.” [13]

교회의 사도직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감도에 순종하는 것과 교황 및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과의 긴밀한 일치입니다. 이 둘은 필수불가결합니다.

바오로 6세가 말했듯이 성령은 “복음화의 주 실행자”, [14] 우리 개인적 삶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의 사도직에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입니다. 복음화는 “교회에 고유한 은총이자 소명이며, 가장 깊은 정체성입니다. 교회는 복음화를 위해 존재합니다.” [15]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의 의미는 우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을 천국에 이르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성령께 ‘새 복음화’를 위한 빛과 힘을 청합시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복음화를 위해서는, 따라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는지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느님 영의 지평으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깁시다! 그분께서 우리가 신앙을 실천하며 증거할 수 있게 하실 것이며, 우리가 만나는 이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실 것입니다.” [16]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퍼뜨리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어려움에 닥치더라도 노력을 줄이지 맙시다. 오히려,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 성모님 망토 아래 피신하면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행실로써, 흔들리는 사람의 귀에 해 주는 적절한 말로써, 그리고 모든 이들을 대하는 사랑으로써, 보다 더 효과적인 성령의 “라우드스피커”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두 번째 조건은 교황과 주교들과의 일치, 즉 기도와 지향의 일치입니다. 나는 항상 이 점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베드로와 함께, 베드로 아래에서, 주교단과의 일치 안에서라야 우리가 교회에 효과적으로 봉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와의 일치를 의미하는 교황과의 일치를 특별한 충실함을 가지고 입증함으로써 모든 이들이 눈에 사도적 연속성을 보다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성인은 이렇게 썼습니다. “로마 교황에 대한 사랑은 우리 안에 즐거운 열정이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기도 중에 주님과 대화하게 되면, 우리는 이해할 수 없고 한숨과 슬픔만 따르는 일들 속에서도 성령의 작용을 인식하게 하는 명확한 시각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17]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걱정과 두려움 없이 세상을 그리스도께 되돌려 드리려는 우리의 노력을 계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힘을 얻게 됩니다. 이는 십자가 현양 축일, 영광된 십자가의 축일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입니다. 영광의 길은 자발적이고 환희에 찬 고통의 감수를 요구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 안에 허락하시는 신체적이고 도덕적인 고통 말입니다. Per crucem ad lucem, 십자가를 통하여 빛으로, 아버지 성인께서는 이렇게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마리아께서 계속해서 우리 곁에 계시는 한, 십자가는 환희로 차 있습니다. 나무에서 장미꽃이 핍니다(우리 기도실의 나무 십자가처럼). 때로는 가시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미천함에도 불구하고 영혼들을 구원하는 예수님을 돕는 기쁨은 너무나 경이로운 현실입니다!

며칠 후 나는 로마로 돌아갑니다. 거기에는 언제나처럼 처리되어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리 사랑하는 돈 알바로의 시복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지향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아직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돈 알바로와 그의 글들을 더 잘 알고 퍼뜨리도록 하십시오. 그가 복되신 성삼위와 오푸스데이의 정신,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께 완전한 충실함으로 응답한 것에 감사를 표합시다.

또한 계속해서 병든 이들—오푸스데이 형제들과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이 자신을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일치시킬 수 있도록 합시다. 그리하면 그들이 더 간절하게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데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모든 사랑을 담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2013년 9월 1일 졸링겐에서

여러분의 아버지

+하비에르

[1] 교황 바오로 6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3회기 맺음말, 1964. 11. 21., 25항.

[2] 『가톨릭 교회 교리서』, 869항.

[3] 요한 2:11; 마르 3:13-15 참조.

[4] 요한 19:26-27 참조.

[5] 사도 1:12-14 참조.

[6] 증거자 성 막시무스, 『마리아의 생애』 8권, 97.

[7] 사도 9:15.

[8] 『가톨릭 교회 교리서』, 863항.

[9] 성 호세마리아, 강론 「교회를 향한 충실」, 1972. 6. 4.

[10] 교황 프란치스코, 일반알현 연설, 2013. 6. 26.

[11] 교황 프란치스코, 세계청년대회 폐회미사 강론, 리우데자네이루, 2013. 7. 28.

[12] 성 호세마리아, 강론 「교회를 향한 충실」, 1972. 6. 4.

[13] 성 호세마리아, 『길』, 942항.

[14] 교황 바오로 6세,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 1975. 12. 8., 75항.

[15] 위의 글, 14항.

[16] 교황 프란치스코, 일반알현 연설, 2013. 5. 22.

[17] 성 호세마리아, 강론 「교회를 향한 충실」, 1972.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