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주교의 2월 사목서간

교회와 오푸스데이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목서간이다

나의 영적 자녀들이여,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우리 사업의 뜻 깊은 기념일들로 풍부한 달들을 계속해서 지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우리 모두가 교회이고 오푸스데이임을 상기합시다.

수일 후면 주님께서 호세마리아[1] 성인에게 오푸스데이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을 위한 것이기도 함을 이해하도록 해 주신 85주년 기념일입니다. “나는 오푸스데이에 여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 했습니다.” 창설자께서는 당신 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쓰셨습니다. “하지만 1930년 2월 14일 주님께서는 나에게 기대치 않은 아이를 갖게 된 아버지가 경험하는 느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 쭉, 나는 여러분에게 더 큰 애정을 가져야 할 의무가 있음을 느낍니다. 나는 여러분을 어머니가 아기를 보듯 합니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분의 가슴에서 당신 딸들을 위한 깊은 감사가 쏟아져 나왔음을 덧붙입니다.

오푸스데이에 여성이 있어야 한다는 이 하느님의 비추심에 아버지 성인께서는 얼마나 감사하셨는지요! 다른 곳에서 설명하셨듯이, “참으로 하느님의 사업은, 주님의 그러한 명시적 뜻이 없었다면 . . . 한쪽 팔만 가진 채, 반만 완성되었을 것입니다.”[2]

여성의 존엄과 사명에 관한 사도 서한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수태고지의 장엄한 순간을 고찰하셨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4:4)의 이 말로써,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안에 예정된'(에페 1:9 참조) 신비가 결정적으로 실현된 주된 순간들을 함께 연결 짓습니다. 아들, 말씀이며 아버지와 본질에서 하나인 분이 '때가 차서' 여인에게서 나시어 사람이 되시었습니다. 이 사건은 구원 역사로 이해되는 사람의 지상 역사에서 전환점이 됩니다. 바오로 성인이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마리아'라는 이름이 아닌 '여인'으로 부르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은 창세기(3:15 참조)의 '원 복음' 말씀과 일치합니다. 그녀는 '때가 참'을 표시하는 중심적 구원 사건에 등장하는 '그 여인'입니다. 이 사건은 그녀 안에서 그녀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 . 그리하여 '때가 참'은 '여인'의 특별한 존엄을 나타냅니다.”[3]

딸들이여, 이 고찰은 단지 좋은 말씀일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여러분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해 보기를 권고하는 것이며, 여러분의 일상의 충실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호세마리아 성인은 이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1965년의 서간에서 성인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구원 역사에서 여성에게 부여하신 역할이 탁월하게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공동구원에 대한 특별한 기여입니다.” 그리고 오푸스데이의 영적 딸들과 모든 그리스도인 여성 일반에게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 안에서 여러분은 모범을 보고 여러분의 재능과 일상 활동을 은총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얻습니다. 사회와 가정에서 여러분의 역할을 성화의 신성한 도구로, 교회의 중심에 있는 특별한 사명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은총에 대한 개인적 응답에 따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아름답게 하셨던 그 뛰어남과 우선됨을 공유합니다.”[4]

우리가 초자연적 유대로 하나된 그리스도인 가족이라는 사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하느님의 사업 안에서 나의 딸들이 가진 필수불가결한 역할로 강조됩니다. 오푸스데이 성직자치단 안에서 남녀가 교육과 사도직에서 완전히 분리되지만 이 영적 가족의 아버지인 단장이라는 가시적 기반 위에서 영적, 도덕적, 법적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것은 주님의 명시적인 뜻이었습니다. 호세마리아 성인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업 안에서 우리가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밥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각자는 필요로 하는 것을 가져갑니다.”[5] 따라서 교회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특히 말씀하실 때에도 성인께서는 또한 적절히 변용하면 남성에 관한 말씀을 하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구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마련하신 환경에서 말입니다. 사도적 독신이든 혼인이든,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응답은 항상 완전해야 합니다. 하느님 사업의 마리아의 해에 여러분이 나자렛의 성 가정께 세계의 모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권합니다. 교황께서는 이 주제에 관한 일반알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자렛의 가정은 가족, 모든 가족의 소명과 사명을 재발견하도록 촉구합니다. 나자렛에서 그 삼십년 간 있었던 일은 그래서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 보통이 되고 무관심이나 적대감이 아니라 상호 협조가 평범한 것이 되도록 하십시오.”[6]

하느님께서는 관대함을 원하십니다. 그 조화와 평화의 원천이 항상 모든 가족(자연적이든 초자연적이든) 안에서 지배하도록, 그리하여 나날이 모든 가족 안에 나자렛의 분위기를 재현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신비를 간직한 가정이 있다면, 세상의 언저리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구하러 오신 하느님 아들의 신비, 예수님의 신비가 작용합니다. 그분은 세상을 구하러 오십니다. 이것은 가정의 위대한 사명입니다. 오시는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 가정 안에서 각 가족 구성원 안에서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 자녀들, 남편, 아내, 할아버지, 할머니 안에 예수님은 계십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맞이하십시오. 예수님은 그 가정 안에서 영적으로 자라나실 것입니다.”[7] 비슷한 방식으로, 교회라는 큰 가정 안에서도 말입니다.

자연적 유대에 기초한 가정은 결혼이라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안정적이고 결정적인 결합에 뿌리를 둡니다. 이는 창조 때에 하느님의 명령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8] 세례 받은 이들에게는, 잘 알다시피, 결혼은 또 하나의 성사입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상태에 적합한 은총이 부부에게 내려집니다.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의 모상입니다.[9] 아버지 성인께서는 쓰셨습니다. “그것이 내가 항상 그리스도인 가정, 혼배성사로 맺어진 모든 가정을 희망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와 사랑스런 결합을 하신 위대하고 신성한 신비의 빛나는 증거입니다. 성 바오로는 이를 sacramentum magnum, 큰 신비(에페 5:32)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적 세포가 거룩함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태어나고 성장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례성사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한 신성한 사명을 각자가 그들의 삶에서 반드시 이루어야 함을 인식하면서 말입니다.[10]

성 호세마리아께서는 부부들에게 당신의 경험과 사제직으로부터 얻은 조언을 주셨습니다. 한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질문에 답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참되게 사랑하십시오! . . . 물론 절대 아이들 앞에서 다투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모든 걸 알아차리고 금방 판단합니다. 아이들은 성 바오로께서 qui iudicat Dominus est (1코린 4:4), 판단하시는 것은 주님이시라고 한 것을 모르지요. 아이들은 서너 살밖에 안 되어도 마치 어른처럼 생각합니다. '엄마는 나빠, 혹은 아빠는 나빠.' 참 안된 일입니다. 엉망진창이 되는 거지요! 그러한 비극이 여러분의 아이들 마음에 생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기다리고 참으세요. 그리고 나중에 다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고 나면. 하지만 조금만 다투세요. 자신이 옳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11]

우리 모두는 이 조언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는 타인과의 형제애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성질머리는 호주머니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아버지 성인께서는 익살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웃으며 주위 사람들의 삶을 즐겁게 만드십시오.”[12] 뭔가 특이한 행동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순수한 영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때때로 무뚝뚝하고 성마른 반응을 할 때가 있습니다. 교만의 결과인데,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쉬운 치료법이 있습니다. 용서를 구할 줄 아는 것, 상처를 준 사람에게 어떻게든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 그리고 기분이 상했을 때에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강력하게 우리 마음에서 분노를 물리쳐내야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상하게 할 악성균을 “배양”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에 관해 매우 분명하십니다. 복음은 말합니다. '살인해서는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13]

사랑의 향주덕은, 인간적 애정을 필요로 하는데, 항상 우리 자신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도록 다그칩니다. 성 호세마리아께서는 하느님 자녀의 이상을 인상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다른 이들이 사뿐히 즈려밟고 갈 깔개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바로 덧붙이셨습니다. “단지 시적인 표현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성화가 어렵듯이. 하지만 쉽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은, 강조하건대, 모두의 발치에 있으니까요.”[14]

1930년 2월 14일의 기념일은 여성들이 부르심 받은 대로 가정과 직장, 직업적 사회적 단체에서 하고 있는 핵심적인 공헌을 상기시킵니다. 아마 잘 모르겠지만, 나의 딸들이여, 여러분이 사회에서 보여주는 단아한 용모, 예의 바름, 미소는, 청결하고 주의 깊게 보살핌 받는 여러분의 가정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 자녀임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멋진 방법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향기[15]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표징입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라!”[16] 이교도들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대하는 사랑을 보며 말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함을 보아야 합니다. 봉사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기쁘게 내어줄 열망을 기르도록 합시다. 가정을 위해 봉헌된 이 마리아의 해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더 크게 살펴봅시다. 집에서부터 시작합시다. 우리 각자가 가족적인 분위기를 주위에 만들어내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마리아와 요셉께 가까이 가면, 주님께서 우리 영혼에 심어주신 좋은 성향을 키워나갈 많은 방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같은 날에 기념하는 성 십자가 사제회 창설일도 다른 이들의 삶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도록 촉구합니다. 오푸스데이 안에서, 호세마리아 성인께서 지치지 않고 가르치신 바와 같이, “우리는 모두 평등합니다. 단지 하나의 실제적 차이만 있습니다. 사제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무를 지고 그들의 형제 자매들이 사뿐히 밟고 갈 융단으로서 자신을 땅바닥에 두어야 합니다 . . . 사제들은 강인하고 상냥하며 다정하고 명랑해야 합니다. 특별한 방식으로 봉사하면서, 항상 침착하고 즐겁게, 하느님 사업의 하느님 자녀들을 위해야 합니다.”[17] 그리고 모든 영혼들을 위해야 합니다. 사제들은,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일치의 도구입니다.

이 달에 있을 다른 전례적, 가족적 축일에 대해서는 넘어가겠습니다. 사순시기의 시작, 아버지 성인께서 1932년 2월 16일 영적으로 들으신 “사랑은 행동이지 달콤한 말이 아니다”는 하느님의 말씀 기념일, 1947년 하느님 사업을 위한 성좌의 decretum laudis 기념일. 각자는 기도시간에 개인적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 호세마리아께서 오푸스데이의 집을 위해 쏟으신 정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하나만 인용하겠습니다.

성인의 딸들이 여성들 사이에서 사도직을 시작하기 위해 처음 일본에 갔을 때, 그 열도를 향해 항해하는 동안 성인께서는 기도와 생각으로 그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지역 대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 나라에서 사도직을 시작할 때, 성인은 항상 하느님 사업 여성들의 도착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성인은 각 대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자매들이 빨리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모든 가능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오푸스데이가 그곳에서도 완전해 질 것입니다.

나는 왜 아버지 성인께서 어느 날 나를 다른 아무도 없을 때에 새로 지어진 관리부 구역으로 데려가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은 빌라 테베레에서 첫번째로 완성된 건물이었습니다. 나는 아버지 성인께서 센터에서 모든 것이 제대로 되려면, 감실 다음으로, 당신의 딸들이 항상 먼저 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시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조는 뚜렷했습니다. 관리부 구역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있었고 아버지와 그 아들들이 기거하는 곳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황님과 그의 지향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 달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발표할 새 추기경 서임과 추기경회의를 염두에 두십시오. 여러분의 기도에 로마 교황을 돕는 모든 이들을 포함시키십시오. 나의 지향과 긴밀하게 일치하면서.

나의 모든 사랑을 담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2015년 2월 1일 로마에서

여러분의 아버지

+하비에르



[1] 성 호세마리아, 「사목서간」, 1965. 7. 29., 2항.

[2] 성 호세마리아, 가족모임 기록, 1955년.

[3] 성 요한 바오로 2세, 사도 서한 「여성의 존엄 Mulieris dignitatem」, 1988. 8. 15., 3~4항.

[4] 성 호세마리아, 「사목서간」, 1965. 7. 29., 3항.

[5] 위의 글, 2항.

[6] 교황 프란치스코, 일반알현 연설, 2014. 12. 17.

[7] 위의 글.

[8] 창세 1:26-28 참조.

[9] 에페 5:31-32 참조.

[10] 성 호세마리아, 『대담』, 91항.

[11] 성 호세마리아, 가족모임 기록, 1974. 6. 23.

[12] 성 호세마리아, 가족모임 기록, 1974. 6. 4.

[13] 마태 5:21-24.

[14] 성 호세마리아, 『대장간』, 562항.

[15] 2코린 2:15.

[16] 테르툴리아누스, 『호교서』 39, 7 (CCL, 1, 151).

[17] 성 호세마리아, 「사목서간」, 1956. 8. 8. 7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