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소중함

지난 6월 “L’Osservatore Romano” 에 나온 오푸스 데이 총대리 오카리스 몬시뇰의 기사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철학자 코르넬리오 파브로의 호세마리아 성인에 관한 가르침, 특히 자유에 대한 사랑에 대한 존경에 관한 글이다.

파브로 신부

올해는 코르넬리오 파브로 신부님 탄생 100주년이다. 파브로 신부님은 1911년 8월 24일 이탈리아 플루밍나노에서 태어나 1995년 5월 4일 로마에서 서거하셨다.

파브로 신부님은 Stignatine 수도회 소속으로, 위대한 철학자이자 대학 교수였다. 나에게는 또한, 오푸스 데이 설립자이신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성인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긴밀한 유대를 가진 분으로 기억된다.

파브로 신부님은 호세마리아 성인을 그의 집필을 통해 알게 되었고 매우 존경했으나,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어서 슬프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하지만 호세마리아 성인의 첫 번째 후계자 Alvaro del Portillo 주교나 오푸스 데이의 고위 성직자들, 특히 철학자 Carlos Cardona와의 우정을 통해 호세마리아 성인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성십자가 대학교

파브로 신부님의 호세마리아 성인에 대한 존경과 감탄은 어떤 의미에서 직감적이었다. 나는 파브로 신부님이 ‘sine glossa’에 대해 말하는 것을 한번 이상 들었는데, 그에게 있어서 호세마리아 성인의 메시지는 성경의 ‘sine glossa’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존경은 지적인 관점에서도 증진되었는데, 이는 어떠한 의문의 핵심도 꿰뚫을 만큼 집중적인 고찰을 통한 것이었다. 내 생각에 이게 바로 파브로 신부님이 70년대 초에 이미 우리에게 호세마리아 성인의 계획 (훗날Pontifical University of the Holy Cross에서 실행하게 된)을 수행하라고 권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는 파브로 신부님이 종종 표현했던 (그리고 그의 휘하에 실행되었던) 갈망을 진실로 감사한 마음으로 잊을 수 없다. 그의 갈망은 대학교에 그의 질적, 양적으로 (약 30,000 장서) 대단한 도서관을 기증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 그가University of the Holy Cross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제공했던 훌륭한 세미나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파브로 신부님은 호세마리아 성인의 가르침 중 주요 내용에 엄격한 논평을 다는 데에 힘을 쏟았다. 나는 그 중 특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단 두 가지를 이곳에서 언급하겠다. 첫째는, El primado existencial de la libertad [실존주의적 자유의 소중함 (The existential primacy of freedom)]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은 1977년L’Osservatore Romano에서Un maestro de libertad cristiana [그리스도인 자유의 교사 (A teacher of Christian freedom)]라는 제목으로 개편되어 더 짧게 출간되었다.

파브로 신부님은 자유라는 주제를 매우 심도있게 연구하고 저술한 학자로 잘 알려졌는데,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님의 자녀로서의 자유 (the freedom of the children of God)’의 심오한 근원을 호세마리아 성인의 도움에 힘입어 (그는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위대한 선물을 자연스럽게, 더 나아가 은총을 통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깊이 통달하고 잘 설명했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은총이 주는 자극에 완전히 유순한 그리스도인만이 참되고 완전하게 자유롭다.”

파브로 신부의 저서

“이 복음 말씀은 오푸스 데이 창설자의 가르침에 비추어볼 때 특별히 빛난다. 이는 우리 실존의 대단한 모순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 최상위 진실은 언제나 모순적으로 들린다. 따라서 죄악에 의해 상처받고 영혼이 약해진 인간의 ‘진정한’ 자유라는 진실은 하느님에 대한 ‘진정한’ 순종이라는 진실, 즉 현세에서 고통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갈망함으로써 자신을 버리고 세상의 것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제 2회 바티칸 공의회와의 완벽한 일치 하에, 오푸스 데이 창설자는 개인의 자유를 제 1의 선이며 그리스도인에 의해 존중되고 길러져야 하는 것으로써 명확히 제시했다. 이로써 자유의 소중함은 교리로만 남아있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오카리스 몬시뇰

그리고 파브로 신부님은 이렇게 끝맺었다.

“에스크리바 몬시뇰에 의해 역설된 그리스도인 자유의 실존주의적 소중함은 인간이 자신의 힘에 의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와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서만이 그리스도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불가분하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파브로 신부님의 또 다른 저서는El temple de un Padre de la Iglesia [어느 교부의 열정 (The mettle of a Father of the Church)] 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는 오푸스 데이 창설자가 1992년까지 쓴 글들의 핵심 주제를 광범위하게 분석한 글이다. 이렇게 자세한 연구는 파브로 신부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했다.

“호세마리아 성인은 신비스러운 직관과 정통 교리를 융합시킴으로써 독자들을 부드러우면서도 확고하게 깊은 관상과 열심한 사도직의 길로 인도한다. 우리 시대의 이러한 활동들은 이 세상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단단한 초석들이다.”

오늘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세속주의는 교회의 구원사업에 대한 명백한 장애물이다. 오푸스 데이 창설자의 사고를 묵상하면서, 파브로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다.

“세속주의의 도전에 맞서, 교회는 에스크리바 성인을 통해 매우 근본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을 안전지대 뒤로 숨겨서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믿음에 반하는 문화를 어리석게 끌어안는 방법이 아니라,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은 모든 인간이 인간적인 노력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하는 것의 영원한 기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방법이다.”

코르넬리오 파브로 신부님이 호세마리아 성인의 영적인 메시지의 중심에서 포착한 내용의 깊이는 그의 사색이 얼마나 면밀한지를 보여준다. 파브로 신부님 자신도 그의 철학적 활동이 세 가지 기본적인 방향으로 발달되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사고를 해석하고 더 깊이 들어가 행동하는 주체 (being as act)를 재발견하고 참여의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파브로 신부님은essential Thomism라고 불렸다. 두 번째 방향은 근대와 현대 철학을 살핌으로써 무신론과 내재의 철학 (philosophy of immanence)의 긴밀한 관계를 엄격하게 연구한 것이다. 세 번째는 키에르케고르의 헤겔에 대한 반대를 옹호한 것이다. 즉, 개인적인 자유와 개인의 절대성(하느님)에 대한 헌신을 옹호한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방향은 모두 수렴하고, 단지 현대적 사고에 대한 반대로만 볼 수 없다. 코르넬리오 파브로 신부님의 지적 여정에서,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적 현실주의에 비추어 현대적 사고 안에서 발견되는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호세마리아 성인의 통찰력과의 진정한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 호세마리아 성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가톨릭적인 또는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얻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요소들이 있다. 이는 정통 가톨릭에서 변하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깊은 통찰력, 전통적인 철학적 사고와 역사 해석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되는 가르침을 세우고자 하는, 결코 무분별해서는 안 되는 건강하고 적절한 열망, 현대의 사상과 과학의 경향에 대한 깨어있는 인식, 그리고 현대 사회와 생활 방식의 변화에 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태도 등이다. (밭고랑 428)”

파브로 신부님이 호세마리아 성인의 가르침에서 포착해낸 중심 요소들의 깊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파브로 신부님이 철학자이면서 신학자였음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그의 사제 직분이나 말년의 연구와 저서들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가 언제나 자신의 철학적 활동을 그의 사제로서의 생활과 떼어놓을 수 없는, 진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의 금경축 행사 며칠 뒤 파브로 신부님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하느님의 계획과 성모님의 지속적인 보호가 언제나, 특히 거대한 위험이나 고통의 순간에서 나를 도와줬었다. 나는 이를 주님의 자비의 표시로 본다. Cupio dissolvi et esse cum Christo. 나는 자신감과 평화로운 기쁨을 가지고 ‘언젠가 오실 분 (the One who is to come)’을 기다리고 있다. 50년의 진실에 대한 봉사라는 지속적인 고군분투에서 나의 눈은 내 자신의 연약함을 보았지만, 동시에 결코 좌절되지 않을 희망과 함께 이처럼 높은 목표에 대해 매우 감사해왔다. (1985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