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하 감사합니다

오푸스 데이 단장 하비에르 에체바리아 주교가 교황 즉위 25주년을 맞이하여 쓴 글로 스페인 ABC 신문에 실려진 기사다. 주교는 본 글에 "나이와 육체적 고통은 그분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지만, 그러나 그분의 의지를 강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분명하고도 모범적인 관대함을 가지고 그토록 사랑하는 십자가의 예수님과 한층 더 일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2003년 10월 16일

교황 성하의 지난 몇 년간 사진들을 보면 그동안 변하신 모습도 있고, 변치 않은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한 인간의 몸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쇠약해지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분명하고도 강력하게 다가오는 것은 교황께서 가시는 곳 어디서건 언제나 똑같은 열정으로 그분께 밀려드는 군중들의 모습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가 지니신, 인간을 사로잡는 매력의 신비를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을 그분께 의지하게끔 이끄는 희망들 안에서 어떤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을 피흘리게 하는 모든 갈등으로 말미암아 평화에 대한 널리 펴진 갈망이 있는데,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참된 평화에의 길이 불일치를 뛰어넘는 용서의 실천에 있음을 부단히 선언하셨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우리를 교황께 의지하도록 하는 것은 거짓과 빠른 경향에 지친 사회가 느끼는 진리에 대한 강렬한 갈증이라고도 말합니다. 교황의 목소리는 영속하는 진리, 부패하지 않는 도덕을 아무 두려움없이 선언하셨는데, 이는 인간의 품위를 방어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요한 바오로 2세의 비범한 매력을 참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신학이 Sensus Fidei(가톨릭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 있는 일종의 신앙심)라고 부르는 것을 좀더 깊이 묵상해봐야 합니다.

이 관점에서 우리는 교황과 일치해 있는 교회, 그 최고 목자와 분리될 수 없는 교회, 그분 없이는 이해될 수 없는 교회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를 위해 살고 계신 교황, 그분 안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고 있음을 봅니다.

그분께 귀 기울이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분께서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까지"(마태 5, 18) 결코 사라지지 않을 복음으로부터 나오는 권위를 지니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함께 있음으로써 역사 또는 문화에 토대한 그 어떤 유대보다 더 강한 친교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하느님의 가족으로 만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 만드는 신비에 도달하게 됩니다.

나이와 육체적 고통은 그분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지만, 그러나 그분의 의지를 강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분명하고도 모범적인 관대함을 가지고 그토록 사랑하는 십자가의 예수님과 한층 더 일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황께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교회가 이 새 천년기에 "복음화 사명에 대한 새로운 자극에 흥미를"(사도직 서한, Novo Millennio Ineunte, 2) 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보편교회의 목자로서 교황 성하 자신이 모범적으로 이 사명을 다하고 계심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음과 같은 그분의 말씀을 접할 때 말입니다. "신자들은 우리 시대의 남녀들에게―종종 무의식적으로―그리스도를 '말하지만' 말고, 그분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역사적 시기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것, 새 천년기의 세대들 앞에 또한 그분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가 아닙니까?"(동 서한, 16)

주님과의 이 "교제"는 특히 고통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의 성처들을 만져보도록, 다시 말해, 마리아로부터 취하시고, 죽음에 당신 자신을 넘겨주시고, 부활에 의해 변모되신 그분 인성의 충만함을 인식하도록 부단히 초대받고 있습니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요한 20, 27) 교회는 토마처럼, 부활하시고, 신적 광채를 충만하게 입으신 주님 앞에 고개 숙여 예배하면서 이렇게 외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 28) (동 서한, 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 후계자의 일치에서처럼 교황 성하와 사람들 사이의 신비로운 조화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께 대해 갖고 있는 자연스런 애정과 감사의 정서는 교황께서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 안에서 최상의 것을 재발견하도록 해주셨다는 인식인데, 이는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과의 개인적 관계입니다.

교황께서는 첫 번째 회칙에서, 인간은 "교회가 그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걸어가야 할 첫 번째 길입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분께서 신자들의 마음과 맺고 있는 마지막 관계는 인간에 대한 그분의 열정이 인간이 되신 하느님 안에 그 뿌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있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고 계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은 십자가의 그것, 교황께서 또한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이 단지 논리적으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중요성, 그분 가르침의 심오함, 그분 결심들의 중대성을 살펴 봄으로써 교황 즉위 25주년을 축하하고 있으나 이제 온 마음을 다해 그분께 감사를 드려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최근 그분께서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폼뻬이에서 요청하신 것처럼 자녀다운 애정과 깊고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항상 그분을 위해 기도드립시다.

+ 하비에르 에체바리아 주교

오푸스 데이 단장